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설사 짝을 찾지 못한들, 헤어진들, 싸운들 출연자들에게 무슨 현실적인 타격이 있겠는가. 프로그램이 끝나면 그 모든 희로애락이 거의 동시에 봉합되는 것일텐데. 반면 시부모와의 관계, 부부의 케미야말로 일상을 뒤흔드는 보다 실질적이고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후자가 그야말로 리얼하다고 할 수 있다. 나도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죽고 못사는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랑의 감정이라는 모호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환상에 근거한 연애 리얼리티는 일종의 선거전과 비슷하다. 투표를 통해 선출직 공무원인 대통령을 뽑을 때, 임명직 공무원인 국무총리나 장관, 각료가 새롭게 등장하는 것보다 백배 천배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우리는 나이가 먹을수록 깨닫게 되는데, 국회의원, 대통령처럼 국민의 손으로 뽑은 ‘선출직 공무원’들이 동사무소부터 검찰, 장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관료로 이루어진 ‘임명직 공무원’들의 거대한 시스템을 무너뜨리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점점 더 실감하게 된다. 아니 이 관료들이 국민의 기대를 품은 선출직 공무원들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길들이고, 때로는 좌초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면서 정치적으로 어른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사랑의 환상이 프로그램 이후에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과,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기존의 시스템으로 복귀하는 일상을 경험하는 일은 안타깝지만, 그래서 너무 닮아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저런 연애 리얼리티를 볼 거야? 나이가 60이 되어도 그럴 거야? 라고 누군가 나에게 묻길래 곰곰히 생각해 봤다. 내가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끝도 없이 탐닉하는 이유는, 투표를 통해 구현되는 정치적 기대와 전망을, 그 불씨를 조금이라도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므로 나에게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정치시사 프로그램과 같은 카테고리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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