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이는 20대 초반부터 함께했기에 내 인생의 다양한 실패를 함께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아이의 유년기에 좀 더 좋은 사료를 먹이지 못했던 것이 영원한 한으로 남을 것 같다. 좀 더 좋은 사료를 먹였더라면 더 오래 살아주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꽁이가 떠난 후 지속적으로 곱씹곤 했다.
사실 꽁이는 2017년에 크게 아파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었던 경력이 있다. 그때 키우던 고양이들 세 마리가 동시에 아파 정신이 없는 와중에 동물병원에서 권했던 치료를 받던 중 깜또라는 아이가 먼저 떠나는 사건이 있었다. 누구도 옆에서 임종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우리 가족들은 크게 상심했다. 그래서 함께 입원해 있던 꽁이는 집에서 마지막을 보내게 해주자는 의견으로 동물병원에서 퇴원을 시켰다. 수의사는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를 그의 남은 생으로 가늠하며 마음의 준비를 당부했었다. 그러나 그 날 이후로 꽁이는 3년이나 더 산 것이다! 나는 꽁이가 우리 가족들의 사랑을 분명하게 느꼈고 삶에 대한 큰 의지로 병원에서의 진단을 무시하고 혹은 이겨내고 3년을 더 산 것이라 생각한다.
7월 9일이 지나 이제 꽁이가 없는 삶의 1년이 지났다. 나는 이제 문장 안에 그 아이의 이름을 넣으며 전만큼 울지 않는다. 이제 간신히 그 아이의 이야기를 써낼 수 있게 되었다는 느낌이다. 꼭, 너에게 나는 어떤 마음을 전해야 한다고 늘 빚진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막상 꽁이가 떠난 날에는 걱정했던 것만큼 많이 울지는 않았던 것 같다. 꽁이가 떠난 7월의 이전에 설마? 혹은 혹시? 싶었던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소중한 고양이는 2020년이 되자 눈에 띄게 쇠약해졌는데 그나마 위안이었던 것은 여전히 왕성한 식욕과 다정함이 넘쳐났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꽁이의 육체는 날이 다르게 쇠약해지고 말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꽁이가 떠난 날 느꼈던 슬픔보다도 훨씬 컸음을 고백해야겠다.
꽁이는 고양이답게 언제나 호기심이 넘쳤고 단층 주택에 살아서인지 집 밖의 세계에 대해서도 늘 궁금해 했다. 그래서 소싯적엔 집 밖을 탈주해 온 동네를 뛰어다녀 엄마와 나 그리고 동생은 꽁이를 잡으러 정말 긴 시간 동안 동네를 뛰어다녀야 했다. 또 집 안의 높은 곳이란 높은 곳은 모두 점령해야 성에 차 했기 때문에 냉장고 위든 장롱 위든 모든 곳이 꽁이의 영역이었다. 스크래치는 또 얼마나 좋아했던지... 집 안에 남아나는 가구가 없었다. 특히 식탁 의자는 꽁이가 정말 좋아하는 발톱긁개였는데 엄마와 아빠는 경악했지만 나는 언젠가 저 너덜너덜한 식탁 의자가 그를 추억하게 하는 흔적으로 남아 우리 식구들을 오래 아프게, 그러면서도 따뜻하게 하리란 예감에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