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예전에 음악하는 사람을 사귄 적 있었다. 그는 기타를 끝내주게 잘 쳤고 나는 아니었다. 내가 손가락을 움직여 쳐본 거라곤 컴퓨터 자판이 다였다. 그래도 우리가 사귄다고 하면 음악 세계가 나를 덥석 포용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철저히 배척하는 것 같았다. 그는 내게 기타를 가르쳐주려고 했다. 공통 관심사가 거의 없었으니 내가 기타를 배우면 오순도순 할 얘기가 참 많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교습 과정은 15분 만에 사랑의 심판대가 되었고, 30분을 넘길 쯔음에는 사랑의 단두대가 되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타를 잡은 내 손가락이 손모아장갑처럼 꼭 붙어 떨어질 줄 몰랐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니.”
“그럼 이렇게?”
“아니, 그 반대.”
“이제 알겠다! 이렇게?”
“아니아니, 그 쪽 말고......!”
“아잇쒸........”
“자기야. 제발 화내지 말고 들어줘, 자기는 기타에 재능이 하나도 없어. 내가 본 그 누구보다.......”
“알았어. 이제 기타를 보내줄래......”
사랑했던 기타리스트는 내 목소리에 코멘트를 주기도 했다. 노래는 본인도 못하지만 내 목소리 자체가 멀리 뻗어나가는 소리가 아니라고 했다. 무슨무슨 학적으로 소리의 파동이 어쩌구...... 큰 소리가 꼭 멀리 가는 소리는 아니지만 자기의 목소리는 크지도 않고 멀리 가지도 않고 어쩌구...... 나는 타격없는 척 하다가 혼자가 되었을 때 조금 울었다. 노래를 못한다는 것을 씩씩하게 납득하기엔 춤도 너무 못 춰서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부모님은 나의 허접한 가무 실력이 집안 내력이라고 했다.
“나도 못하고, 너도 못하고, 너희 아빠도 큰아빠도 작은 아빠도 못하잖아.”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너희 사촌오빠도 못한단다.”
사실이었다. 언젠가 명절 흥에 취해 몰려 간 노래방에서 실로 충격적인 그의 노래를 들어본 적 있었다. 오빠가 심한 장난을 치는 줄 알았으나 그는 본 중 가장 진지하였다. 그의 노래는 불순한 세력이 끼어든 주식 그래프처럼 알 수 없는 폭으로 오르락내리락했다. 때로는 올라가기만 하다 내려오지 않았고 때로는 한없이 낮아지며 자신의 최저점을 자체로 갱신했다. 사촌오빠는 나보고 노래를 잘한다고 했지만, 어디까지나 ‘지’와 비교한 것이므로 실은 욕이었다.
지금은 노래에 대한 불가능한 욕망을 접었다. 에그2호 선생님의 가르침은 복근 소환용 명령어로 유용하다. “아! 아! 아!” 라고 해보면, 둡실한 살집 속에 숨은 복근이 수줍게라도 응답을 주기 때문이다. 조수미 선생님의 수제자를 노렸다는 사실이 영원히 비밀일 수 있다는 것도 다행이다. 하마터면 세계 소프라노계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위협하는 작가가 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