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환절기 마다 인후염을 달고 산다. 강단에서 워낙 큰 목소리로 수업을 하고 평소에도 호탕하게 웃는 습관 때문인지 일교차가 심할 때면 인후염으로 고생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 느껴지는 목구멍의 불편함은 어쩐지 심상치 않은 느낌이었다. 그 즉시 프로폴리스와 흑마늘즙 종합비타민과 비타민씨 아연을 때려 먹었다. 어떤 녀석의 도움인지 목구멍의 불편함이 스물스물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트 배송 전까지의 식자재는 부모님께 부탁했다. 식빵, 오뚜기 컵밥, 오렌지 쥬스를 부탁했는데 엄마가 미역국과 장조림을 만들어 갖다 주셨다. 집 앞에 놓아뒀으니 가지고 들어가란 전화 통화로 부모님과의 만남조차 비대면으로 이뤄졌다. 특히 엄마가 사위가 코로나에 확진 됐단 소식을 듣자마자 화들짝 놀라셨다. 조금 서운할 뻔 했으나 몇 시간 후 다양한 식자재 배달로 서운함을 풀어주셨다.
이렇게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따로 일층과 이층에서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남편의 목구멍을 찢는 듯한 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안쓰럽고 걱정되면서도 혹시나 나도 코로나에 옮는 것은 아닐까하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많이 아픈지 남편과 제대로 이야기도 나누지 못해 여러모로 묘한 기분이었다.
연애 초 남편과 연락을 이어갈 때 나는 이미 유행이 한참 지난 신종플루에 걸려 3일 넘게 앓았던 적이 있다. 정말 온몸의 근육들이 비틀리고 열이 심하게 나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당연히 현 남편 구 남친에게 연락도 하지 못했는데 그때 그는 내가 말도 없이 연락을 끊어버린 줄 알고 화를 냈었다. 후에 오해가 풀리고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그 솔직하고 직진인 모습에 반했던 것 같다.
신종플루 또한 전염성 질병인지라 부모님과 함께 살던 나는 생업으로 바쁘신 부모님들이 혹여 옮을까 하는 걱정과 누구도 챙겨줄 수 없는 상황으로 친할머니 댁에 격리 됐었다. 걸어서 7분 이내의 거리에 살고 계셨던 할머니 댁에서 3일을 앓았었는데, 전염성이 높은 질병이라 엄마도 방문 밖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할머니는 자꾸 방에 들어와 불덩이 같은 이마 위에 찬 수건을 계속 바꿔주셨다.
아프기도 하고 혹시 할머니에게 옮길까봐 걱정이 돼서 화를 냈던 것 같은데 할머니는 내가 화를 내든 말든 개의치 않고 계속 손녀딸 걱정과 간호를 멈추지 않았다. 목구멍이 많이 부어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던 그때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 복숭아였다.
무더위도 살짝 가신 8월의 마지막에 무를 데로 물러진 복숭아의 물렁한 조각이 뜨겁고 아픈 목구멍으로 부드럽게 흘러갔다.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누워 있을 때 할머니가 껍질을 벗긴 복숭아 과육을 입에 넣어주던 순간이 가끔 생각난다. 잠에서 깨면 보이던 할머니의 뒷모습과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복숭아 좀 사다 달라 말씀하시던 목소리도.
이후로 나의 소중한 이들이 아프게 된다면 나또한 할머니만큼은 아니더라도 비슷하게나마 살뜰히 챙기는 사람이 되고자 했었으나... 남편의 코로나 확진으로 내 몸이 아닌 다른 몸 챙김의 힘듦과 감사를 새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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