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얼마 전 면허를 딴 친구가 있었다. 장롱 면허의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 운전 연수를 받아 부모님과 제주 여행을 떠난 친구도 있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면허증은 쉽고 빨리 따서 연수와 실전으로 감을 익혀야 한다는 거였다. 꼬불꼬불 복잡한 길이 많은 서울 도심의 학원보다는 경기 북부 파주 쪽에 쫙 뻗은 길이 시험 장소로 적합하다고 추천했다. 학원을 추린 결과 한 곳을 점찍었다.
필기시험은 도로교통공단에서 제공하는 학과시험 모의고사로 공부하면 된다는 조언에 따라 호기롭게 모의고사 문제를 보기 시작했다. 신호등을 비롯해 차선 설명을 보다 문득 나라는 사람에 대해 떠올렸다.
그러니까 단순히 길치라고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방향치와 공감각의 균형을 전혀 갖지 못한 내가 운전을? 새로운 장소는 100% 한 번에 찾지 못해 만나기로 한 상대방이 ‘어디쯤이냐’ 물으면 눈앞에 보이는 것만 말하는 내가? 낮에 갔던 길을 밤에 못 찾는 건 당연하고 ‘여기가 아까 왔던 길이라고?’ 설명할 수 없지만 시공간이 재배치된 거 같다고 느끼는 내가? 매일 갔던 어느 건물의 화장실을 한 달 이상 한 번에 못 찾은 내가? 어쩌면 운전하겠다는 건 나만을 위한 이기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운전을 배우겠다고 하자 지인 대부분이 말렸다.) 지금 생각해봐도 코로나로 인한 격리, 신체의 구속이라는 극단적 경험이 아니었다면 마음먹지 않았을 일이 운전이다.
그런데도 자유롭게 이동하고 싶었다. 그래서 학원에 다니기 전, ‘나 운전 배운다’고 친구들에게 선포했다. 창피해서라도 무를 수 없게 가족을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셀프 소문을 내고 다녔다. 학과시험을 한 번에 통과한 후 얼마나 뿌둣했는지, 합격증을 받아 나오며 도로교통공단 정문 앞에서 사진을 찍어댔다. ‘이게 뭐 대단하다고’ 호기롭던 마음은 딱 거기까지였다. 파주의 한 학원에서 장내 기능시험을 준비하며 처음 운전대에 앉았다. 눈앞에 핸들이 있어 당황했다. 이렇게 바로? 내가 핸들을 잡는다고? “선생님 저는 정말 운전 게임, 놀이동산에서 범퍼카도 안 해봤는데, 괜찮을까요” 묻자 선생님은 여유롭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조등, 방향지시등, 와이퍼, 기어를 헷갈릴 때까지 유지됐던 그의 여유는 이내 급브레이크로 덜컹거리며 출발하자 긴장으로 바뀌었다. 느슨하게 보조석에 앉았던 그가 허리를 곧추세우더니 수업 2교시, 차로 준수 등을 배울 때는 결국 안전 손잡이를 꽉 쥐었다.
오르막과 내리막까지 무난하게 가길 바랐지만 당연하듯 그러지 못했다. 수시로 덜컹거리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주차는 더 난감했다. 직각 주차에 이어 무려 T자 주차라니. 문을 열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건 그동안 ‘나 운전 한다(할거다)’고 낸 소문과 비싼 학원비 때문이었다. 도망갈 구석이 없었다.
‘삐- 불합격하셨습니다’를 몇 번이나 들었을까. 장내기능 시험에서는 주차하며 탈락했고, 주행 시험에서는 좌회전, 우회전, U턴마다 감점받았다. 결국 기능시험 2번, 주행시험 2번을 보고 나서야 합격증을 받을 수 있었다. 유튜브로 주행구간을 보고 또 보고 머리로 몇 번이나 상상 운전했지만 쉽지 않았다. 주차 앱을 다운받아 운전대를 잡아봤지만 현실에서의 운전대를 잡는 기분은 좀 달랐다. 무엇보다 이 큰 고철덩어리를 잘못 움직였다가는 누구든 다칠 수 있다는 게 무서웠다. 방향치, 길치에서 느끼는 한계랑은 좀 다른 거였다.
운전이라는 기술을 획득하기 위해 치러야 할 정신적·경제적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운전대를 잡는 다는 것에 대한 당연한 책임감이기도 했고 좀 더 편리한 이동을 위해 감수해야 할 부분이기도 했다. 신중해야 할 상황, 순간의 판단력이 필요한 상황은 계속 존재했다. 그러니까 공짜는 없었다. 사실 뭐 운전뿐일까. 언제나 좋아지려면 감당해야 할 게 있는 거니까. 그렇다면 이 운전은 내가 이를 감당할 만큼 유용한가. 운전대를 잡은 지 막 6개월이 넘은 지금, 답은 ‘그렇다’이다.
적막이 필요할 때가 있다.
늘 생각으로 가득차 지친 머리와 마음에 호흡이 필요한 시간 같은 거. 운전할 때가 그렇다. 어느덧 조금은 익숙해진 오른쪽 왼쪽 깜빡이, 엑셀과 브레이크를 필요한 순간에 맞춰 운전하다 보면 이 기능에만 집중하게 된다. 꼭 그렇게 말을 해야 하나 싶게 날선 말을 하는 부장이나 다음 달의 카드 값, 미처 정리하지 못한 일들을 생각했다가는 빨간불에 멈추지 않을 수도 옆 차의 왼쪽 깜빡이를 못 볼 수도 있다.
그래서 가 닿으려는 목적지와 그 길로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에만 집중해야만 한다. 이 시간이 가끔은 명상 같기도 하다. 하나에 하나씩 집중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 시간은 대부분 작은 차 안에서 이뤄진다, 이일 저 일을 헤집느라 머리가 자주 복잡한 나로서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집중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