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두렵고, 아무래도 낯선
- 타인에게 말걸기
글. 김봉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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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걸기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5학년 때의 일이다. 입을 벌린 채 가만히 멈춰 있거나, 몇 번이나 더듬은 후에 단어 하나가 겨우 던져졌다. 누군가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더듬이가 되었고,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출석을 부를 때 답을 할 수 없었고, 질문의 답을 알아도 침묵뿐이었다.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는 일조차 할 수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집어 들고 돈을 내미는 것 말고는 불가능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 나는 할 수 없었다. 한순간에 추락했다. 바닥에서 까마득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말을 걸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 옆자리에 앉은 친구는, 너는 하루에 하는 말의 단어가 10개도 안 돼, 라고 했다. 가까운 친구와도 가급적 말을 하지 않으려 했고, 모르는 이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없었다. 세상과 벽을 쌓았고, 혼자서 모든 것을 유지하려고 했다.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아도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찾아 헤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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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게 된 것은 아마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문득 노트를 사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말하지 못한 것들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건 세상에 대한 말 걸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대학에 가서는 편지를 쓰고, 학보 등에 글을 쓰기도 했다. 글이 말을 대신했다기보다는 그것이 유일한 비상구였다.
그렇다고 지금도 글이 말보다 편한 건 아니다. 글은 글이고, 말은 말이다. 글은 불특정의 누군가에게 혼잣말처럼 스며들기 원하는 말 걸기이지만 말은 직접적이다. 지금 이곳의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던지고, 받고 하려면 말을 해야만 한다. 살아가기로 결정한 후에는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일이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연도 하고, 방송도 하고, 글만이 아니라 말로도 살아가고 있다. 가끔은 말을 잘 한다는 소리도 듣지만, 여전히 쉽지는 않다. 육체적으로 힘들 때에는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지만 몸도, 마음도 온전히 내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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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걸기는 지금도 어려운 일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기는 더욱 그렇다. 오랜 세월 굳어진 습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조건이나 환경이 바뀌어도, 심지어 생각이 바뀌어도 흉터처럼 남아 있다. 여전히 내 안에는 그 시절의 어린 내가 존재한다. 말 걸기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웠던 때의 내가.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나를 의식한다.
그래도 말을 건다. 아직까지도 어떻게 말을 걸어야 좋은지는 모른다. 걸기보다는 듣고 대화하기가 더욱 편하고 좋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말을 건다. 여전히 두렵고 익숙하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한다. 그게 어른이 된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과거의 내가 남아 있어도, 어른인 나는 하고 싶은 것만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들도 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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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김봉석
👉 브뤼트, 에이코믹스 전편집장, 부천판타스틱 영화제 프로그래머. 문화 평론가, 영화 평론가로 활동하며<나의 대중문화 표류기> 등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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