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는 텍스트 테라피
- 쓸 수 없었거나, 쓰고 싶지 않았거나
글. 김현예(언론인,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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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이럴 것이다. ‘여자가 지하철에 오른다.’ 두리번거리던 여자는 이내 자리를 찾아 앉고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신문을 보는 중년의 아저씨, 어딘가로 전화를 해대는 파마머리 아줌마. 매일 같은 시각 지하철 2호선에 올라타 사람들을 관찰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한때 써보고 싶었다. 아니 사실, 지금도 써보고 싶다.
이 해묵었던 감정이 솟아오른 건 얼마 전 일이다. 백영옥씨의 에세이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를 넘겨보다 그만 멈춰버렸다. 서문이었다.
‘서점 직원 시절 늘 책방을 열고 싶었습니다. 그 서점이 약국 같은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책 속의 문장을 약 대신 처방해 주는 동네 약방처럼요. 가족이나 연인을 잃은 슬픔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혼자 책 읽는 시간>이나 <너의 그림자를 익다>처럼 같은 상처의 시간을 겪은 사람들의 경험을 처방하고, 파블로 네루다가 함민복의 시는 잠이 오지 않을 때 마시는 따뜻한 차처럼 처방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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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책을 처방해주는 약국. 그 푸근한 이야기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몽글몽글 들떴다. 마치 수습기자 시절 이웃집 아저씨가 사실은 나라를 구하는 슈퍼맨이었다는 사실을 내가 제일 먼저 알면 좋겠다고 상상했던 때처럼. 한가하고, 어이없는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진심이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기자를 꿈꾸던 백수 시절, 기자를 딱 십년만 하겠노라 생각했다. 그럼 그 나머지 시간은? 글을 쓰며 먹고 살겠지라고 한가하게 생각했다.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나란 인간이 얼마나 부족한지 몰랐던 때의 일이었다. 이미 작정했던 시간을 훌쩍 넘기고 난 지금, 나의 꿈을 가끔씩 생각해본다.
4년 전 일이다. 어느 선배가 커피 한잔을 사주겠다고 했다. 복닥거리는 그 카페에서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꿈이 있어. 너는 꿈이 있니?’ 머리를 한 대 맞은 것만 같았다. 나는 그때 선배에게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하며, 나의 월급은 쥐꼬리인지를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러니까, 내 꿈이 뭐였더라.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은 분명히 있었다. 기자가 되고 난 후, 연애를 했고 결혼을 했으며,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부턴 꿈이란 것을 떠올릴 겨를이 없었다. 그 선배와 헤어지고 나서도 한참동안 나는 꿈이 없는 인간으로 지내왔다. 당장 마감해야 할 기사들이 넘치고,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집에 돌아가면 해내야 하는 일들이 산더미였으니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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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내가, 꿈이란 걸 떠올리다니. 그것도 에세이 서문을 읽던 중에 말이다. 사실 과한 표현일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 나만의 상상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꾸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기사를 써내는 것과는 전혀 결이 다른 이야기다. 세상에 있는 일을 내가 전하는 것과는 다르지 않은가. 오롯이 나의 상상과 내가 꾸민 세계에서 벌어지는 것을 묘사하고 전달해 내야 하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욕심내보지 못했던 것들을 감히 ‘꿈’이라고 칭해보려 한다. 어떤가. 꿈은 꿈이니까.
상상을 해본다. 월급쟁이 기자로 살다가 장렬히 은퇴를 한다. 따뜻한 볕이 드는 집이 있으면 좋겠다. 그 집엔 푸른 잔디밭도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작은 마당엔 봄이면 꽃이 피도록 꽃나무도 심어야지. 그리고 나는 그 파란 봄이 한눈에 들어오는 온기 있는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따뜻한 차 한 잔이 있으면 더욱 좋겠다. 4B쯤이나 되는 미술연필을 들고 메모를 하다가 노트북을 펴겠지. 그 곁엔 봄볕에 졸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그르렁거리며 행복한 소리를 내주면 더욱 행복하겠다.
십년도 더 묵은 수첩엔 수없이 많은 낙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세상을 구하는 이웃집 아저씨의 스펙터클한 이야기를 지어야지 하면서 적어뒀던 제목 ‘일세기남자’, 매일 아침 10시면 지하철을 타는 여자, 하루 18시간을 자는 여자의 꿈 속 이야기, 동화랍시고 생각해 둔 양말을 잡아먹는 세탁기까지.
이것들이 낙서로 생을 마감할지, 이야기로 살아날지는 알 수가 없다. (사실은 낙서로 생을 마감할 가능성이 더 농후하지만) 언제쯤, 내가 나의 글을 쓰게 될지, 완결이 되는 이야기를 내볼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지금 하고 있는 내 허망한 소리들의 연장선상에서 끝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떤가. 내 꿈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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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예 기자 👉 중앙일보 기자. <책읽는 CEO>, <위기의 가족> 등 책을 썼으며, 기업관련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 다음 주에는 디자이너 김민정 님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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