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과 ‘희망’
- 쓸 수 없었거나, 쓰고 싶지 않았거나
글. 류송아(스피치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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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게 있다. 입에 담기는커녕 아예 생각 밖으로 밀어내 버린 '팩트’. 누군가의 무심한 ‘팩트 체크’ 전까지는 절대 내 현실일 리 없는 차가운 진실. 내게 그건 '마흔 살이 된다는 것'이었다. 애써 밀어냈던 '마흔 살'은 때때로 불쑥 찾아와 나를 집밖으로 내몰았다. 그렇게 시작한 수영, 운전 연수는 심심찮은 내상과 경제적 출혈을 불러왔지만, 그해가 다 가기 전에 끝내 이루긴 했다. '수영할 줄 아는 마흔의 오너 드라이버’라는 로망.
한밤중의 수영, 무작정 달리는 드라이빙, 여행길에서 우연히 들른 살사바에서의 한때 등 나는 수없이 많은 로망, 그리고 딱 하나의 꿈을 가졌다. 꿈과 로망이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미완의 로망은 상해를 입히지 않지만, 미완의 꿈은 우리를 다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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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날 다치게 한 ‘바람’은 단 하나였다.
고등학생 때 나는 교과서가 사람을 울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시를 통해 알았다. 선생님은 별로였지만 문학 수업은 손꼽아 기다렸고 교과서에 실린 시들을 소리 죽여 외다 보면 ‘시’야말로 가장 완벽한 피조물 (?)같았다. 그렇지만 시인이 되고 싶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입 밖으로 꺼내 놓기에는 좀 초라했다.
좀더 모던(?)한 꿈, 이를테면 번역가, 동시통역사 이런 직업을 꿈꿔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대입 원서를 써야 하자 더는 피할 수가 없었다. ‘네 꿈은 뭐냐?’ 처음으로 내게 물었다. 그렇게 가족들은 물론 국어 선생님까지 뜯어말린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위대한 시인 탄생을 예고하는 듯했던 문학소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난다.
나는 시인이 되지 못했다. 지금은 보고서를 쓰는 직장인으로 살아간다.
시에 써야 할 열정의 상당수를 선후배들과 어울리는 술자리와 리바이스 청바지가 잘 어울리던 어떤 녀석에게 썼다고 인정하기는 싫지만, 이것이야말로 가장 사실에 근접한 진술이다. 그리고 지금, 마음 한 켠에 번지는 이 통증은 분명 열패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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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평범한 일상에서 이따금 시상을 글로 옮기는 창작의 자유쯤이야 왜 없겠는가. 하지만 나는 다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있다. 요리조리 피해 다니고 있다. 선후배들의 등단, 수상, 출간 소식은 상처를 벌려 염장을 하는 것처럼 쓰리고 따갑다. 더불어 그로 인한 선명한 통증이 여전히 내가 꿈꾸고 있다는 반증인 듯해 반가울 때도 있다.
쓰고 싶었지만 차마 쓸 수 없었던 시, 가지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던 인연, 이루고 싶었으나 이룰 수 없었던 소망... 어쩌면 우리 인생은 이렇게 많은 미완들로 완성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차마 얘기할 수 없는' 이루어지지 못한 스토리는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있다. 결국 패배도 실패도 아닌 그 이야기를 스스로 풀어낼 수 있게 되면, 다시 시를 읽고 쓸 수 있지 않을까, 다시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또다시 미완으로 남는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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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치라이터 류송아 👉 삼성디스플레이 커뮤니케이션팀에서 9년째 스피치 라이터 일을 맡고 있다. 💬 다음 주에는 저널리스트 김현예 님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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