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둡고 정든 창고
- 쓸 수 없었거나, 쓰고 싶지 않았거나
글. 김봉석(문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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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 다니는 지인이 물었다. 이런 건 죽어도 뭇 쓰겠다, 그런 게 있냐고. 글쎄요. 청탁이 들어오는 건 다 써요. 밝고 화사하고 만인의 감동을 자아내고 이런 것은 잘 못하지만 그래도 <좋은 생각> <샘터> <행복이 가득한 집> 같은 잡지에도 글을 썼어요. 아주 행복해, 이런 게 세상을 위한 축복이야 같은 말은 안 해도 행복의 언저리나 여명 같은 건 쓸 수 있으니까요. 쓰다 보니 행복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냥 개념일 뿐 아닐까, 라는 식으로 결론이 나오기도 했지만요.
짧은 답을 하기는 했다. 아이들을 위한 글은 못 쓸 것 같다고. 하이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글까지는 괜찮은데 초등학교 정도의 아이들에게 딱히 내가 할 말은 없는 것 같다고.
하지만 말 특히 확언이나 결심은 쉽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 뒤, 바로 그 편집자가 아이들 용 동화를 한 번 써보면 어떻겠냐 했고, 고민하다가 덜컥 한다고 했다.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책은 나오지 않았지만 두 권 분량의 동화 원고를 써서 넘겼다. 지금도 원고는 묻혀 있는 상태다. 말에는 언령이 있다고도 하는데, 아이들용의 글은 안 쓴다는 내 말에 뿔이 나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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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꽁트집에 한 편을 싣기도 했고, 고 문호근 선생이 연출한 가극 <금강>의 대본을 쓰기도 했다. 그 시절부터 나는 무엇이든 쓰는 것으로 일관했다. 이런저런 리뷰를 쓰고, 대본이나 르포도 쓰고. 세 명의 친구와 출판기획사라는 것을 시작한 적도 있다. 기획하고, 쓰고, 책도 만들자고. 대학 신입생을 위한 실용서 하나 낸 것 말고는, 내내 놀았다. 2년쯤 되어가니 지쳐갔다.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대필이나 사사 원고라도 쓰자고 했다. 돈을 벌어 생존하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냐고.
한 친구가 말했다. 그래도 우리 원칙을 지켜야 하지 않냐. 마음의 양식이 되는 글을 쓰자. 또 하나가 동의했고, 마지막 하나도 기울었다. 한 6개월 정도를 더 같이 놀고, 술 마시고, 포커도 치다가 각자의 길을 갔다. 나는 영화격주간지 <시네필>의 기자가 되었다. <시네필>이 망하고, 창간한 지 얼마 안 된 <씨네21>로 갔고 이후 글쟁이의 길을 걸었다.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모토는 비슷하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생존이다. 먹고 살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하는데, 별다른 재능이 없는 내가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것이 글쓰기였다. 그래서 잡다한 글을 쓰며 살아오게 되었다. 들어오는 일은 뭐든지 한다. 시간만 된다면. 거절하는 건, 도저히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을 때다. 절대 불가능한 이유가 아니라면 일단 한다.
다만 마흔이 넘으면서 조금 바뀌었다. 그동안 좋아하지 않는 일도 수없이 했으니까, 이제는 가급적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보고 듣고 쓰자. 좋아하지 않는 것, 남들이 더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은 굳이 내가 하지 말자. 욕망의 온도가 낮은 인간이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자.
그런 류의 이유 덕분에 나는 온갖 잡다한 글들을 써 왔다. 능력이 없어 쓸 수 없는 글로는 아예 가지도 않았으니 별 문제는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다 해 왔다. 하지만 쓰지 않는 글들은 늘 있었다. 이를테면 오래 전, 일기에 쓰던 글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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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무 것도 할 생각이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고등학교 2학년 때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친구도 별로 없고, 있다 해도 그와는 일상의 시시껄렁한 대화 말고는 하지 않았다.
일기에다 말을 하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들을 쓰기 시작했다. 한 10여년 뒤 <씨네21>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대량의 글을 생산하기 전까지는 계속 일기를 썼다. 한 2년간은 매달 원고지로 500에서 600매를 써댔으니 이외의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닐 때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무아지경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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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돈을 받고 쓰는 글에는,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은 했지만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하지 않았다. 나에 관한 이야기도 가급적 하지 않았다. 독자가 읽고 싶어 하는, 알고 싶어 하는 것은 필자인 ‘나’가 아니었으니까.
지금은 일기에 하고 싶을 이야기를 가끔은 페이스북에 쓴다. 돈을 받는 일도 아니고, 공적인 성격도 강한 매체이지만, 그래도 내 낙서장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 마음대로 던져도 되는 곳이니까.
그래도 할 수 없는 말들은 있다. 뒤틀린 마음과 그릇된 욕망 같은 것이 어찌 없을까. 당연히,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그런 것들을 쓸 수 있는 공간이 픽션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혹은 내 삶을 픽션으로 만들어버리면 어떨까?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좁히거나 지워지는 정도가 아니라 서로 겹쳐서 존재해버리는 2020년의 전야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쓸 수 없는 이야기는 과연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내 안의 어두운 어딘가로 흘러 들어가면 그건 또 다른 세계의 어딘가에서 폭발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요즘은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 쓸 수 없는 이야기는 없다. 그건 어딘가 축축하고 컴컴한 공간에서 끈질기게 힘을 키우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미 어딘가에서 다른 모습으로 출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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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김봉석 👉 브뤼트, 에이코믹스 전편집장, 부천판타스틱 영화제 프로그래머. 문화 평론가, 영화 평론가로 활동하며<나의 대중문화 표류기> 등 다수의 책을 썼다.
💬 다음 주에는 스피치 라이터 류송아 님의 칼럼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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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gDang by function fongdang@iwfn.co.kr 서울시 용산구 대사관로 32 02-792-2213 수신거부 Unsubscrib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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