했다면, 했더라면,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이 세계는 내가 선택한 일들이 낳은 당연한 혹은 의외의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내 의지가 만들어낸 영향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믿기에는, 당장 그 믿음의 대가가 너무 크고 감당할 자신이 없기에, 그렇다고 말할 수가 없다. 너무 많은 일들이 미약한 나의 선택이나 결정 따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저만의 우주를 이룩한다. 상점들은 일정한 시간에 문을 열고, 꽃은 계절과 다투며, 물은 아래로 흐른다. 적신다.
내가 선택했든, 선택하지 않았든 무섭도록 엄연한 우주. 나의 믿음과는 겨루지 않는, 영월한. 콜록. 이 감기는 내가 선택한 일들의 결과일까, 아니면 영원하고 엄연한 우주에 내가 감염된 결과일까. 분명한 건 나는 아직 이 우주와 통약불가능한 존재로 남고 싶다는 점이다. 아직은 우주의 일부로 포섭되는 일은 피하고 싶다. 우주는 자연은, 하늘은, 아름답지만 나에게는 무자비하기 그지없다.
하루에 몇 차례씩 부모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죽음이 내가 선택한 일들이 낳은, 혹은 내 선택이 의도한 것과는 거리가 먼 의외의 결과일지라도, 내가 그들의 삶에 연루되었기에 치러야 할 일들은 생각보다 괴롭고 버겁다.
그래서 차라리 죽음이 한없이 거대하고 영원한, 저 엄연한 우주가 오래도록 반복해온 수많은 일들의 오랜 질서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으면, 그래서 내가 그들의 우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나는 다만 그들만의 엄연하고 엄밀한 영원한 우주에 잠시 포섭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어쩌면 나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때 전화를 받았을 수도, 눈치챘을 수도, 오랜 미움에 눈앞이 어둡지만 않았더라면, 아니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 먼저라는 걸 알았더라면, 그렇다면 그들의 우주에 나도 더 가까이, 쉽게 포섭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더라면, 라면, 라면, 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