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ston, Tranquility Base here. The Eagle has landed. 휴스턴, 여기는 고요의 기지. 이글은 착륙했다." _ 암스트롱
"Roger, Tranquility. We copy you on the ground. You got a bunch of guys about to turn blue. We're breathing again. Thanks a lot. 알았다, 고요의 기지. 지상에서 수신했다. 당신들 때문에 숨이 넘어가 파랗게 질릴 뻔했는데, 이제 다시 숨을 쉴 수 있겠군. 정말 고맙다." _ 휴스턴 우주 센터
- 1969년 아폴로 11호 달 표면 착륙 당시 교신 내용
따뜻한 라떼가 한 잔 필요하다. 일요일의 일상을 깨워줄 크고, 따뜻한 라떼를 마련하기 위해 양말을 신는다. 털 모자를 눌러쓴다. 두터운 가디건을 꺼내 눅진한 냄새를 맡는다. 베란다 문을 열고 볕에 털어서 입는다. 귤도 하나 까먹는다. 공기는 차갑고 햇살은 바삭바삭하다.
맞춤하게 소매를 접는다. 겨울이 오고, 사람들이 지나가고 가게들은 물건을 헐값에 내다 판다. 계단을 내려오다가 멈춰서 꽤 오래 울었다. 생략할 수 없으니까 우는 것이다. 울고 나면 마음에 아쉬움이나 초조함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제자리로 돌아간다. 다만 이런 종류의 울음은 내가 울고 있다기 보단, 울음이 나를 통과해서 지나가는 것에 가깝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육중한 기차처럼, 막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는 울음이 지나가는 커다란 통로가 된 기분이다.
열매는 거푸 이사를 했고, 항성이는 연애를 한다. 더불어 몇 가지 소식들도 지나간다. 저 먼 은하계로 탐사선을 쏘아 올린 사람도, 새로운 라인의 향수 브랜드를 런칭한 이도 없고, 구속 150km로 공을 던져서 프로구단에 지명된 사람도 없다. 열매는 재단선이 삐뚤게 인쇄된 달력 때문에 고민이고, 항성이는 지독한 소득세 때문에 난감하다.
내가 모을 수 있는 소식은 이 정도가 전부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자리에서 일어나 괜히 턱걸이를 시도해본다. 겨우 다섯 번을 채우고 금세 멈추었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분발’의 최선이다. 원래 ‘분발’이라는 단어는 끼니를 잊을 정도로 노력한다는 뜻이라는데, 애당초 나는 이미 큰 컵 가득 커피를 따르고, 피자 한 판에 콜라, 치킨윙을 주문한 참이다.
나의 분발은 윤택하고, 사소하며, 영 글러 먹었다.
항성이랑 통화를 하고 나서 더 그런 기분이 든다. 항성이의 성공과 순조로운 연애 때문에 나의 이 작고 소중한 ‘분발’이 초라하다. 전에는 항성이의 사회적 성공과 연애가 계절성 폭우처럼 일시적이라고 여겼는데, 요즘 그의 성공은 궤도에 오른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성공을 구독하는 사람이 된 것만 같다.
그에 비하면 나는 솔직히 세상과의 접촉이 자주 끊어진다. 퇴역을 앞둔 오래된 통신 위성처럼 느리다. 냉전 시대에 쓰던 OS를 갖고 있어서 업데이트도 어렵다. 태양열을 집적하는 날개도 더 떨어져 나갔다. 춥고 졸리다. 깜빡 깜빡 맑고 차가운 겨울 밤 하늘을 올려다보면 멀리서 불규칙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그거.
그게 나다. 열 세 살 때였는데, 국영수는 곧잘 하고, 누구와도 어울리질 못하니 가족들이 나를 로켓에 실어 이곳으로 보냈다. 우리 가족이 세상에 내보낸 척후병의 역할에 맞춰 삭막한 도시를 염탐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도시, 방에 불을 다 끄고 라디오를 켜면, 전파 수신 램프가 깜빡이면, 어린 마음에 그 램프가 내가 세상과 접속하고 있다는 신호 같아서 좋았다. 아아 휴스턴, 들리나요? 우주는 차갑고 커다랗고 조용합니다. 휴스턴? 휴스턴, 주무세요?
당시에 아버지는 이틀에 한번 돌아와 아홉 시면 잠들었다. 낯선 은하 저편, 이 차가운 도시로 나를 올려보낸 나의 휴스턴,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은 딱 두 가지다.
내가 뇌출혈로 사망 선고를 받고 큰 병원으로 옮겼을 때, 대기실에서 나를 위해 몹시 기도해 주던 장면이 하나.
또 한 번은 커다란 강에서 요령좋게 물고기를 잔뜩 잡아 올렸던 기억. 그게 멋지고 대단해서 사람들한테 온통 자랑하고 다녔다. 아. 가느다랗고 빈약한 기억들을 차출해서 그를 선해하는 일은 솔직히 쉽지 않다.
나쁜 장면들은 힘이 세고, 좋은 기억은 쉽게 사그러든다. 결론이 어떻게 될지 사실 잘 모르겠다. 이 감정이 긍정인지, 부정인지, 사실인지 기만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이 낯설은 삶을, 겁먹지 않고, 용케도 건너 왔다는 생각이 나를 지탱해준다. 오늘밤 이곳은 시리도록 맑고, 그리운 휴스턴은 아득히 멀리 잠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