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안돼. 배고플 때 식량으로 쓸 수 없으니까. 당장 끼니 삼을 것도 없는데, 커피 농장만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 풍경을 바꾸지 않으면 식민지를 벗어날 수가 없어, 없다는 것이다. 오후에 숙소 근처에 커피 농장을 바라보며 감탄하던 내 모습이 좀 무안했다. 은은하지만 단단한 차별의 나라 영국을 떠나면서 빌리는 조국을 부강하게 하는 일에 헌신하자고 다짐했다.
조국에 헌신하고 싶다니. 물론 애국자(Patriot) 라는 이름의 미사일을 만들어 버튼을 누르는 것보다는 맥주에 애국심을 담는 편이 더 낫긴 하다. 무엇보다 세렝게티는 생각보다 건조하고 서늘해서 맥주 마시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이곳에서는 제일 흔한 맥주 브랜드지만, 코끼리 심볼이 선명한 *터스커(Tusker)를 홀짝 홀짝 마시고 있으면 느긋한 행복감이 찾아온다.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얼마간 행복해질 거라는, 그게 꼭 오늘 당장이 아니어도 된다는 기분.
거대한 누우떼는 다른 누우 시체를 다리 삼아 국경의 강을 넘고, 코끼리는 어린 코끼리들을 모아 이웃한 다른 코끼리들에게 인사를 시킨다. 아이스박스에 잔뜩 담아간 맥주를 마시면서 코끼리 떼를 보고 있으면, 세상이 아직 전부 다 인간의 손에 떨어지지는 않았다는 안도감이, 세상에는 아직 훼손되지 않은 신성함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스며든다.
미사일 대신 맥주를 만들려고 빌리는 보리를 잔뜩 키우겠다는 것이다. 빌리의 꿈을 문장으로 만들어 엮어 보니, 문장이 자꾸만 이륙하고 싶다, 싶다고 칭얼댄다. 좋은 문장에는 비행기의 날개처럼 불가사의한 양력 같은 게 있다. 속도를 높였을 뿐인데, 그 운동이 어느새 지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밀어 올리는 힘으로 바뀌는, 바뀌어 이륙하는.
모쪼록 그의 조국애가 실현되어서 너른 보리 밭과 맛있는 케냐 맥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나도, 빌리도, 빌리의, 조국 케냐와 다섯 명의 어머니와 스무 명의 형제들도 모두 조금씩은 행복해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