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김밥은 맛있게 싸졌고 나는 이틀 연속 김밥을 먹었다. 사실 나의 엄마는 손재주가 좋은 편이 아니라 학교 행사 때문에 김밥을 쌀 때마다 굉장히 곤혹스럽고 걱정이 앞섰다고 하셨다. 딸의 소풍에 맛있는 한 끼를 챙겨 보내고 싶은데 모양까지 예쁘면 얼마나 좋을까 늘 고민이셨다고. 요즘에 와서 드는 생각은 엄마는 악력이 약하신 편이라 김밥의 모양이 예쁘게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소풍을 갔는데 그날따라 엄마가 싸주신 김밥이 도시락 통 안에서 모두 풀어져 있었다. 나는 전날 미리 다른 친구들에게 네가 싼 참치김밥이 먹고 싶으니 나를 위해 많이 싸오라고 여기저기에 말을 해뒀었기 때문에 엄마가 싼 김밥은 못 먹어도 어쩔 수 없겠다 싶었다. 그때 반 친구 중에 유독 짓궂은 친구 한 명이 매일 나를 괴롭혔는데 왜 도시락을 꺼내지 않냐고 들러붙기 시작했다. 어린 마음에 낡은 락앤락 통도 부끄러웠고 그보다 더 부끄러운 건 모두 풀어져 김밥으로는 보이지 않는 내 점심이었다. 도시락 통을 들고 도망다녔지만 결국 짓궂은 친구는 내 도시락을 빼앗았고 반 친구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뚜껑을 열었다. 그러더니 “뭐야, 다 풀어져서 안 연 거였어? 엄마 속상해 하신다.” 하더니 정말 태연하게 내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먹지 말라고 그 뒤로도 몇 번 말했으나 맛만 좋구만, 이라고 하며 그 많던 김과 밥을 모두 먹어줬던 친구.
그때는 집과 관련된 모든 것이 싫었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부끄러웠다. 자주 싸우는 엄마와 아빠가.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앞두고는 더 그랬다. 사복을 입어야 했고 도시락뿐만 아니라 간식, 거기에 용돈까지 준비해야 하는 것이 버겁고 부담스러웠다. 나의 사정은 엄마의 사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엄마의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그 너머의 무언가를 바라는 내가 더 싫던 그때. 쉬운 길은 미워하기와 부정하기였다. 덮어두고 모르는 척 하기도 꽤 편한 도피 방법 중 하나였다.
어떻게 무사히 그 시절들은 지나갔다. 여러 번의 소풍과 수학여행은 다행히도 즐거운 기억들을 더 많이 남겼다. 그럼에도 집 김밥을 먹을 때마다 그 시절의 엄마가 생각난다. 새벽 2시에 집에 들어와 5시부터 김밥을 준비하는 젊었던 엄마의 잠이 덜 깬 어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