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엄마의 성격 때문에 어렸을 때 핀잔도 많이 들었다. 아무리 자기 자식이지만 그런 굼뜬 모습이 답답해 말이 곱게 나가지 않은 것이다. 그 말에 어린 나는 더 주눅 들고, 더 답답하게 행동했다.
그러나 둘의 관계가 전복되는 상황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엄마는 나이를 먹으면서 민첩했던 모습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고, 나는 회사 생활로 10년 구르면서 예전보다 조금, 아주 조금 빨라졌다(예전보다 나아졌다는 것이지 여전히 ‘빠른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그거 조금 빨라졌다고 엄마의 굼뜬 행동에 답답함을 느끼고 꼭 한두 마디를 덧붙인다. 엄마는 별말 없이 내가 쏟아 내는 말을 듣기만 한다. 어릴 적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와 함께 마트의 계산대에 도착하면 내 입에서는 ‘빨리빨리’가 속사포로 쏟아진다. “회원 바코드 미리 빨리빨리 준비해”, “내가 계산할 테니까 시장가방에 빨리빨리 넣어”, “뒤에 사람 있잖아. 이따 확인해도 되니까 이쪽으로 빨리 와” 등. 계산 담당직원의 빠른 손놀림으로 다음 차례 손님과 섞이는 게 번잡하거니와 앞에 있는 사람이 빨리 빠져줘야 한다는 생각에 엄마를 재촉하게 된다. 우선 급한 마음에 내가 시장가방에 계산한 물건을 쓸어 담고 있으면 “그렇게 넣으면 안 돼. 나도 내 방식이 있어! 너랑 못 다니겠어!”라며 참았던 마음을 빵 터뜨렸다. 어릴 적 함께 서점에 가서 하염없이 책을 고르는 나를 보며 빨리 고르라 채근하다 근처에 있는 책을 쥐여 주는 엄마에게 참다 참다 “나도 보고 싶은 게 있어!”라고 말하던 상황과 오버랩 되었다.(그러다 끝내 책을 고르지 못해 엄마를 열받게 하고 집에 돌아왔다.)
생각해 보면 제일 답답한 사람은 엄마이지 않을까 싶다. 나야 ‘본 투 비’ 나무늘보지만 엄마는 한평생을 날다람쥐로 살아왔다. 그랬던 사람이 자비 없는 세월의 힘에 의해 생각과 달리 따라주지 않는 느린 몸을 받아들여야 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몸 따로 마음 따로, 서로 손발이 맞지 않아 서랍에 손을 찧는 경우도 많아졌고, 물건을 떨어뜨려 다리와 발에 상처가 생기는 날도 허다하다. 이럴 때마다 엄마는 자기 자신이 싫어지고 화가 난다고 한다. 그러다 옆에 있던 내게 괜히 “너도 내 나이 되어봐!”라며 퉁을 준다.
엄마가 느려진 몸에 적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처럼 나도 달라진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하겠구나 싶다. 그거 조금 젊다고 유세 부리지 말고. 엄마 한정의 조급증은 버리고, 엄마의 몸과 마음이 엇박자를 낼 땐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이 말을 해야겠다.
지금보다 더 나무늘보였던 어린 내가 날다람쥐 엄마에게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
“괜찮아. 천천히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