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은 봉숭아물이 첫눈이 오는 날까지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맹신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초등학생 주제에 무슨 첫사랑일까 싶긴 했지만 그 시절에는 꽤나 절실했다.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이어지던 나와 할머니의 의식 속에서 첫눈이 오기까지 살아남은 봉숭아물은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나의 첫사랑은 성공했을까? 한 것일까...? 이런 생각을 거치다 나는 첫사랑이 과연 무엇일까 깊은 고민에 빠지곤 한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했던 것을 첫사랑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고 처음으로 사귀자고 해서 만났던 남자친구가 첫사랑이라는 생각은 들지도 않는다. 내가 의미부여 하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 첫사랑이란 조금 큰 의미를 갖는 듯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사랑해’라는 말이 갖는 의미에도 정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었다. 특별한 말이라고 생각했었고 아끼고 아껴뒀다가 중요한 순간에만 비장의 무기처럼 이 말을 꺼내 쓰겠어! 라고 생각했었다. 과거형으로 쓰고 있는 것은 지금 신랑을 만나며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생각이 바뀌자 내가 잃어버린 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 생겨버렸다. 도시락 안의 가장 맛있는 반찬을 마지막으로 먹으려다 이미 배가 불러 제대로 맛을 느끼지 못했던 것처럼, 사랑해라는 말을 아끼다가 정말 했어야 하는 순간을 너무 많이 놓쳐버린 것이다.
할머니에게 이 말을 좀 더 많이, 자주 했었더라면.
나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편이라 '낯도 가리고 수줍음이 많아요'라고 하면 모두들 깜짝 놀라지만 정말로, 나는 수줍음이 많고 부끄러움도 잘 타서 뭔가 낯간지럽다는 느낌이 커서 저 말을 참 못했던 것 같다. 지금 남편과는 하루에 다섯 번도 넘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물론 결혼 전에는 한 시간에 한 번씩... 아무튼 좋은 것은 많이 자주 쓰고 나눠야지 라고 생각한다. 아끼다가 똥 만들지 말고.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도,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많이 표현하고 자주 하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물론 여전히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동생에게는 잘 표현하지 못하지만 생일처럼 뭔가 계기가 있는 날에는 좀 더 내색해보려 한다. 내가 얼마나 당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끼고 있는지를.
정전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지만 길가에 피어있는 봉숭아꽃을 보면 할머니, 하고 부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