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더 참을 수가 없다는 듯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양껏 웃는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게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그는 상대의 동조를, 아주 희미한 미소의 흔적이나마, 기다릴 수 없을 만큼 딸기 시럽이 웃겼던 거다. 한동안 야근이 잦더니 기어이 정신을 놓은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어쩐지 나도 딸기 시럽이 웃겨지는 바람에 본래 다짐했던 것보다 더 크게 많이 웃었다. 급기야는 그 농담이 진심으로 좋아져서 이런 게 인지부조화 현상의 한 사례가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여기에 이렇게 글로 옮기고 있다.
여러분. 딸기가 직장을 잃으면 뭔지 아세요?
그때는 그냥 신나게 웃고 말았지만, 이제 와 감히 평하건대 농담을 나누기에 더없이 적절한 순간이었다. 입사하고 반년이 넘어갈 무렵이었는데 돌이켜 떠올려도 일이 많았다는 것 외에 여타의 세부가 잘 기억나지 않을 만큼 자꾸만 뭐가 많았다. 어영부영 이것저것을 하는 동안 머리칼이 급격히 희었고 도무지 미용실에 갈 기력이 없어 이천오백 원짜리 카카오프렌즈 족집게를 구매해 부적처럼 모셔두었다.
그런 순간에, 매일의 과업이 턱 끝까지 차올라서 자칫하면 정말 일에 잠겨 죽을 수도 있겠다고 덜컥 겁이 나는 그런 때에, 싱거운 농담을 해서 남을 웃기려고 드는 이가 옆자리에 앉아있다는 건 예상 밖으로 대단한 감흥을 주었다.
모름지기 사람이란 허술하고 헐렁한 데가 있게 마련이니까. 이 모든 일을 해내는 것도 망치는 것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나도 얼추 흉내 정도는 낼 수 있겠고 혼자서 일하던 때와는 다르게 여기엔 퍽 사람이 많으니 나 하나쯤은 어찌어찌 묻어갈 수도 있을 것 같고, 또 기어이 이 모든 일이 망해도 까짓 인간 시럽이 되고 말지, 저 바보 같은 농담을 탓해버리자는…… 글로 쓰니까 약간 이상한데 아무튼 용기를 얻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나도 요즈음의 나처럼 일하는 게 싫다가 좋다가 할 사람에게 심정적으로나마 보탬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하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이 오고 있으니까 귀신이 나오는 얘기인데, 단칸방 독립생활이 답답해 처음으로 아파트 월세를 결심한 무렵의 일이다.
풀옵션 원룸보다 세가 저렴한 아파트라는 게, 새롭게 구매해야 할 살림의 목록과 관리비 같은 걸 계산에 넣기 시작하면 빛 좋은 개살구에 가깝다. 몸집이 큰 곳으로 거처를 옮기면 자연히 세간도 함께 불어날 테니 다음번 이사부터는 용달차 기사님이 아니라 포장이사 업체를 알아봐야 한다는 것도 예상되는 문제점 중의 하나였다.
그래도 행복했다. 주방과 분리된 거실에 큰방 하나와 작은방 하나, 작은 베란다가 딸린 집이었다. 안에서 오갈 수 있는 공간이 생기니까 숨통부터 탁 트였다. 이쪽 벽에서 저쪽 벽까지 거리가 멀어져 어쩐지 시력도 조금 좋아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작은방이 기꺼웠다. 함께 사는 사람과 사이가 좋아도 타인의 기척이 싫은 날은 온다. 그런 때마다 화장실에 틀어박힐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집안을 쓸고 닦을 때마다 내가 무슨, 어연번듯한 영지를 갖춘 영주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우스운 소리지만 정말 그랬다. 물론 영주에만 감정이입을 한 것은 아니고 어떤 날에는 드라마 〈브리저튼〉 OST 따위를 틀어놓고 높으신 귀족 나리를 맞이할 준비에 바쁜 하녀 따위에 빙의해 미뤄둔 집안일을 해치웠다.
나는 그 집이 정말로 좋았다. 그런데 동거인 K는 어땠냐 하면, 처음에 그곳을 좀 탐탁지 않아 했다. 이사를 하고부터 꿈에 흰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나온다는 거였다. 딱히 뭘 하는 건 아닌데 그냥 나타난다고 했다. 대체로 현관 앞이나 화장실 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는 식이었다. 한번은 자동차 트렁크를 열었는데 안에서 그 여자가 불쑥 일어난 적도 있다고 했다. K는 그 대목을 말할 때 특히 질색했다.
무심히 들어 넘기는 것도 한두 번이지, 나중에는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의 꿈에 들어가서 여자의 머리채를 쥐어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 나더러 어쩌라는 건가 싶었고……
아니, 귀신이라니? 어디까지나 K의 꿈 이야기일 뿐이기는 하지만, 소중하고 귀중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집에 귀신이 산다니? 귀신이 그의 꿈에만 나온다는 것도 곱씹어 볼수록 썩 마땅찮았다. 계약서에 서명한 건 난데, 그러니까 이 가구의 명실상부한 세대주는 나인데 와서 읍소를 하든 협상을 하든, 담판을 지으려면 나하고 지어야 할 것 아니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