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주문했는지조차 잊을 만큼 크고 작은 택배 박스가 이틀에 한 번꼴로 도착했다. 물론 쇼핑의 과정에서 가장 만족감을 느끼는 때는 집에 도착한 상자를 뜯어보기 직전이었다. 대체로 ‘직접 봤으면 과연 이걸 샀을까…’ 싶은 게 많았지만 드물게 괜찮은 것들이 있었다. 최고로 효용이 컸던 제품은 블루투스 오디오다. 저음이 강조되는 오디오를 사서 나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 동안 멍하니 유튜브를 시청했다.
네모난 화면 안에는 반짝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도의 부엌, 발리의 요가원, 미국의 국립공원을 넘어 가끔은 반세기 전 사람들의 어느 평범한 하루를 구경했다. 그들에겐 일상이겠지만, 시공간 너머에서는 뭔가 특별해 보였다. 방구석에 퍼질러 앉아 다채로운 세상 구경을 이토록 편하게 하다니, 호사를 누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일이 귀찮게 검색 키워드를 입력할 필요도 없이 지난 시청 기록과 선호도를 바탕으로 유튜브의 알고리즘 신은 영상 하나가 끝날 때쯤 새로운 것들을 추천해주었다. “이게 더 재밌어 보이지 않아?”
하루아침에 달라진 세상에서, 비슷한 테크트리를 타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인지 유튜브의 매출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했다. 알고리즘 신은 때때로 어느 평범한 유튜버에게 ‘간택’의 은혜를 베풀고, 그에게 돈과 인기를 조금 나누어주었다. 21살의 쟈넬Jannelle Elianna에게도 그런 행운이 돌아왔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2500달러를 주고 산 고물 밴에 예쁜 하늘색 페인트를 칠하고, 그곳에서 애완용 뱀 알프레도와 함께 살아가는 쟈넬은 ’밴에서 샤워하는 법’, ‘내가 밴에 사는 이유’처럼 Z세대의 #vanlife를 공유했는데, 업로드한 영상이 5개도 채 되지 않아서 천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절벽 아래 파도치는 바다가 보이는 캘리포니아 어딘가에 하늘색 밴을 주차하고, 스노클링 장비를 챙겨 풍덩 물에 뛰어드는 그의 모습은 사람들이 꿈꾸는 어느 낭만적 하루의 로망을 정확하게 저격한 것이었다. ‘집’이라고 쓰고 ‘봉고차’라고 읽는 곳에선 비록 무릎과 머리를 제대로 펴고 살 수는 없을지라도.
급속히 늘어난 미국 유랑족의 삶을 다룬 영화 <노매드랜드>의 주인공은 노마드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시를 가르쳤던 아이를 마트에서 마주친다. “이제 아줌마 노숙자(홈리스)냐” 묻는 아이의 질문에 그는 답한다. “집이 없는 게 아니고, 집 건물이 없는 거야, 둘은 다르잖아. 그치? I’m not homeless, I’m just housel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