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은 간신히 알아듣지만, 상대방의 감정, 느낌이 담뿍 담겨 있는 뉘앙스가 가미되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하라는 건가, 말라는 건가. 잘 했다는 건가, 못했다는 건가. 상대방이 예의상 하는 말을 진심으로 알아듣고 기뻐하거나, 에둘러 불만을 표현한 것인데도 응원이나 격려의 메시지로 알아듣고 뿌듯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사적인 대화에서도 말귀를 알아 듣지를 못하니 숨은 뜻과 뉘앙스로 점철되어 있는 비즈니스 미팅은 나의 무덤이고, 수첩과 펜, 노트북은 부장품이다. 나노 단위로 미세한 밀당이 이루어지는 공적인 대화,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비즈니스 미팅에서 나의 해석은 구글 번역기만도 못하다. 내가 말하는 의도도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고, 상대방의 뜻도 도통 헤아리지 못한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 깨달았는데, 나는 사람들의 욕망, 관계에서 벌어지는 알력, 밀당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니 공감대가 만들어질 리가 없다. 마치 다른 고래들과 다른 주파수로 노래하는 북태평양의 어느 외로운 고래처럼.
20Hz에서 40Hz의 주파수로 서로 의사 소통하는 보통 고래들과 달리 캘리포니아와 알레스카를 오가는 어떤 고래는 저 혼자 52Hz로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래서 소통이 안되다 보니, 이런 저런 무리에 끼지도 못하고 연애도 못하고 혼자 하염없이 풍덩풍덩 헤엄만 치는 중이다.
그런데 연구에 따르면 이 해역은 과거 포경 시대에 유난히 포획이 많았던 지역이라, 이 52헤르쯔 고래는 아마도 멸종한 어느 종의 남은 개체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뭔가 돌연변이라서 이상한 주파수의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원래 다른 주파수로 노래하던 독립된 종의 몇 남지 않은 생존자인 셈.
그래서 나도 내가 여러 인간 무리에 뒤섞이지 못하는 이상한 돌연변이가 아니라, 현생 인류의 여러 종 가운데 멸종한 종족의 살아남은 개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대화에 끼지 못하고, 지구 주위를 뱅글뱅글 도는 인공위성 같은 내 처지가 조금은 위로가 된다.
52헤르쯔로 발신하는 나의 메시지를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넉넉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나는 겉보기에는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비슷한 브랜드의 옷과 신발 덕분이다.
사람들과 비슷한 아웃핏을 갖기 위해 나이키와 톰 삭스가 협업한, 멋들어진 신발을 장바구니에 담으면서 마음 속으로 변명해 본다. 사실 나는 현생 인류의 먼 친척쯤 되는 존재이기에, 지금 이 신발이 너무나 필요한 것이라고. 좀 비싸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