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든 영상이든, 글이든 디자인이든 밀리미터 단위로 깎고 매만지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마다, 그리고 그런 나로 인해 귀찮고 지난한 과정을 함께 하는 다른 스태프들을 볼 때마다 뒤늦게 미안하다. 장인은 지나치게 자족적이고, 어디까지나 자기 실현적인 존재이며, 무엇보다 함께 일할 때 거추장스럽다.
사실 장인이 되기보다는 그것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고, 그 매뉴얼이야말로 보다 효율적인 일의 방법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어떤 순간에는 매뉴얼로 만들 수 없는, 개인의 감각이나 경험에 의존한 방법은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 비로소 사람들을 모아 일을 할 수 있고, 일의 규모도 키울 수 있다.
실제 현장에서 일해보면 장인은 한두 개 시제품이나 뛰어난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에는 더 없이 필요한 존재지만, 그것을 양산하는 순간부터는 방해가 되기 쉽다. 양산 과정을 통해 실현될 수 없는 퀄리티나 아이디어는 별 소용이 없다. 그리고 그 양산 과정에서는 비용과 시간, 참여한 인력들의 노고가 모두 고려되어야 한다. 어쩌면 그 양산의 과정을 떠맡은 사람, 그것을 매뉴얼로 만들어내는 사람, 매뉴얼 대로 실현하는 매뉴얼한 직장인이야말로 더 중요한 인물인지도 모른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 어쩌구 그런 말도 그래서 도통 싫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디테일에 매몰되는 장인들이 악마를 소환하는 게 아닐까. 디테일은 매뉴얼로 규정하기 어렵고, 개인에게 온전히 의존한다는 점에서 전근대적이다. 요즘 들어 부쩍 장인의 크리이에티브와 효율적인 매뉴얼 사이에서 고민하는 날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퀄리티에만 매몰되어 있는 내가 방해물이 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 나은 문장이 더 나은 콘텐츠를 담보해주지 못한다는 깨달음 때문에. 디테일에 대한 그 동안의 집착이 어쩌면 맹목적인 것이 아니었나 하는 회의감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