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꽤 과학적인 사람이라 기록을 찾아보니 내가 한참 야구장을 찾던 시절은 리그 전체 평균 타율이 2할 5푼~6푼 정도였다. 지금은 3할에 근접한 타자들이 꽤 많은데, 그때는 잘 없었다. 예외적인 기록이었다. 다 같이 2할 5푼의 힘만 쓰고, 2할 5푼에 만족했다. 조금 덜 때리고 조금 덜 뛰고.
시간이 지나고 지금은 리그 평균 타율도 더 높아지고, 경기수도 훨씬 더 많아졌다. 프로야구 선수에 대한 기대감도 덩달아 높아졌지만, 그만큼 프로야구 선수라는 직업도 더 힘들어진 게 아닐까. 요즘은 2할 5푼을 치는 타자가 있으면 슬럼프라고 불리거나, 심하면 엔트리에서 빠진다. 아니면 지명타자로 경기 내내 대기하거나.
장원진을 생각하면 그 시절 우리는 더 열심히 혹은 더 치열하게 살았다는 기억에 헛점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근무 시간도 더 길고, 야근도 더 많았지만, 분명히 더 힘들지는 않았다. 경쟁이 더 치열하지 않았고, 목표나 기대가 그닥 높지도 않았으니까. 압력이 적었다. 양은 많았지만 퀄리티를 겨루지도 않았고, 목표까지의 거리는 멀었지만 허들이 높지는 않았으니까.
더디더라도 성실하거나, 꾸준함만 있으면 누구라도 도달할 수 있는 정도였다. 스스로를 깎아내릴 필요도 없었고. 다 같이 안타를 덜 때리는 대신, 죄책감도 덜 했을 것 같다. 안타가 더 많이 나오고, 더 많이 뛰고, 더 빠른 강속구가 나오는 야구가 더 좋은 야구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나처럼 실수도, 착오도 많은 사람이 요즘 같은 시대를 사회 초년병으로 살았더라면 아마 진작에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을 것 같긴 하다.
실패는 해도 되지만, 좌절은 하지 말라는 말은 자신의 실패에 관대하라는 뜻이지,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는 강철 멘탈을 가지라는 뜻이 아니다. 실패에 관대하면 굳이 강철 멘탈이 없어도 좌절하지 않겠죠? 그렇지 않나요? 실패해도 기회가 다시 주어질 것이라는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까짓 두 번, 세 번에 안되더라도 네 번에 하면 된다는, 네 번 나와서 한 번만 안타를 치면 된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다면.
2할 5푼, 장원진 유니버스에 비하면 이곳은 가차없는 세상이다.
코치가 된 장원진도 2할 5푼을 치는 선수들은 죄다 2군으로 내려 보내고, 경기가 끝나고 특별 훈련을 시켰을 것이다(아마도). IMF를 기점으로 관대함이나 낭만은 모두 구조 조정되는 바람에 장원진도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장원진 유니버스의 장원진도 그러한데, 여전히 낭만적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사실 퇴행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아직도 낭만, 진정성, 치열함이라는 단어들을 남들에게 전파하고 싶다면 스스로 좀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냥 마음만 받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