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코는 프라모델을 접하고, 다시 인생을 조립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말하면, 지나치게 드라마의 의도대로 따라주는 것일 테니 조금 수정하자. 리코는 프라모델로 다른 세계를 엿보며 자신과 주변을 다르게 보기 시작한다, 정도로. <양산형 리코>는 자신을 건담-주인공이라고 믿었던 아사이의 변화도 보여준다.
맡은 일을 잘하고, 상사의 칭찬도 많이 받고, 사장상까지 받으면서 회사의 에이스가 되고 있다고 믿은 아사이였지만 현실은 달랐다. 사장상을 받은 직원은 한둘이 아니었고, 정기 인사이동에서 인사부로 발령이 난다. 아사이도 최종병기 건담이 아니라 양산형으로 대체될 수 있는 보통의 인력이었다.
리코가 프라모델 가게의 ‘오타쿠’들을 만나면서 배운 것은, 너도 건담이 될 수 있다, 가 아니다. 양산형이 뭐가 어때? 에 가깝다. 누구나 주인공을 꿈꾸지만, 세계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극소수일 수밖에 없다. SNS 등으로 잠깐 주인공의 기분을 맛볼 수 있지만 그게 현실을 뒤바꾸는 경우는 많지 않다. 누구나 잠깐, 어딘가에서 주인공이 될 수는 있지만 순간이다. 하지만 세계의 대부분은 양산형이 만들어간다. 천재는 잠깐 지도해주고 빠지고, 중요한 전투에서 잠깐 빛을 발하고는 사라진다. 실제 전쟁에서도 낡거나 평범한 무기의 일반병들이 모여 승리를 거두는 경우가 많았다. 무기의 성능이 좋다고 해서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최종병기 하나보다 수많은 양산형이 뭉칠 때 더 큰 힘이 생길 수 있다.
물론 잘 안다. 언제나 역사는 최종병기만을 기억한다. 영웅을 원하고, 마지막에 모든 것을 내던져 거대한 벽을 무너뜨린 한 사람을 떠받들기 마련이다. 악당도 마찬가지다. 히틀러는 최고의 악인이지만, 그의 뒤에는 괴벨스도 있고, 평범한 독일 국민들도 있었다. 선도 악도, 최종병기만을 원하고 기억한다.
하지만 뭐 어떤가. <양산형 리코>에서도, 그들은 최종 승리를 얻지 못한다.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지만,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그게 대부분의 인생이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감을 얻었고, 한때를 불태운 자신들에게 만족한다. 그리고 다음 길을 걸어간다. <박하경 여행기>에서 박하경의 학생 하나가 말하듯, 저는 성공하지 않을 건데요, 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삶은 충분히 즐겁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