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생각해봤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것일까?
어쩌다 보니, 나는 여행을 꽤나 많이 가는 사람으로 보이곤 한다. 첫 공식 직장이 영화잡지여서 ‘전켓’이라 부르는 취재 여행을 많이 갔다. 해외의 촬영 현장을 가거나, 해외에서 첫 시사를 할 때 가서 감독과 배우 인터뷰까지 하는 것을 ‘전켓’이라고 한다. 전켓으로 미국의 뉴욕과 LA, 샌프란시스코와 올랜도를 갔다. 아시아에서는 도쿄, 히로시마, 홍콩, 싱가폴, 앙코르와트, 방콕 등을 갔다. 베를린 영화제를 다녀왔다. 영화제 프로그래머를 하면서 프랑스의 깐느, 독일의 베를린, 스페인의 시체스,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영화제 등을 갔다. 20여년 전, 한겨레문화센터와 함께 도쿄대중문화기행이라는 여행을 만들어 3번을 갔다. 그 여파로 비단길 여행사와 함께 야쿠시마, 시마네, 시라카와고, 가마쿠라 등 일본 전역을 다니며 함께 여행했다.
다 좋았다. 나는 새로운 장소를 좋아하고, 이미 갔던 장소도 느긋하게 다시 경험하는 것을 즐긴다. 싫어하는 것은, 쫓기듯이 한 장소를 찍고 또 다음 장소로 가는 기존 패키지 여행 스타일이다. 어딘가를 가자고 하면, 어디도 싫다고 하지 않는다. 아직은 몰라도, 그곳에 가면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먹지 못하는 음식이 없으니 어디 가서도 잘 먹고, 해외를 가면 오히려 잘 자는 날이 많다.
그런데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행에서 만난 이들이 많아서인지, 페북 지인들의 글을 보면 해외에 나간 때가 정말 많다. 온갖 곳에 다 있다. 멀리 아이슬란드와 몽골, 북구와 발트해 국가들, 극단적으로는 남극도. 미국과 유럽, 일본은 너무 많아 헤아릴 수가 없다. 내가 가보지 않은 곳들도 아주 많다. 어디나 아름답고, 그 곳의 스토리도 일상도 관심도 간다. 그런데 그곳을 꼭 가보고 싶은가, 라고 묻는다면 의외로 많지 않다. 언젠가는 가보고 싶다는 정도로 말할 수 있는 곳조차 많지 않다. 언젠가 꼭 보고 싶은 것은, 태양의 피라미드와 나스카 고원의 그림들 정도. 아프리카의 기린과 코뿔소도 한 번은 보고 싶다. 아마 그 정도인 것 같다. 고대 유적들을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따라나서겠지만, 못 가도 크게 아쉽지는 않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혼자 방 안에 있는 것 역시 좋아하는 인간이다. 코로나 유행 초기에, 줄줄이 약속이 취소되고 일도 사라지면서 한 2주일간 집에만 있었다. 집 밖을 나가지 않았고, 배달 음식도 시키지 않았다. 혼자서 책 보고, 영화 보고, 음악 듣고 호사롭게 지냈다. 어릴 때, 나만의 세계에서 지낸 탓일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책과 만화, 영화를 보면서 가상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 때는 픽션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나이가 들어서, 현실의 낯선 장소를 가는 여행이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가상의 세계도 무한하고, 신비롭다. 둘 다 좋고, 둘 다 포기할 수 없다. 서로를 대체할 수 없다.
여행을 좋아하나요? 누가 묻는다면, 여전히 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답한다. 좋아는 하죠....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