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은 흑석동, 두 식당은 신사동과 후암동에 있다. 머리를 말리고 식당으로 출발할 때면, 미국국경을 향해 배에 올라탄 쿠바의 난민들이 멀고 먼 마이애미 해변을 상상하는 것과 비슷한 심정이 된다.
음식을 먹으려고 가기에는 사실 상당히 수고스러운 거리다. 낭비다 싶을 만큼 멀다. 그래서 약간의 명분이 필요한데, 그래서 찾아낸 것이 생 양파일지도 모르겠다. 그 집에는 생 양파가 맛있으니까. 사람은 감각적 쾌락 만으로는 살 수 없고, 약간의 명분이 필요한 존재다. 생 양파에는 맛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
물론 생 양파는 썰어 놓고 오래 두면 말라 버리기 때문에, 생 양파가 아삭하고 맛있는 음식점이란 결국 양파가 마를 틈 없이 손님이 자주 찾는다는 뜻. 회전률이 높다는 뜻이다. 남방참다랑어보존위원회(CCSBT)에 따르면 맛있는 생양파를 내주는 식당은 평균적으로 음식에 대한 만족도 역시 높다고 한다. 남방참다랑어보존협회에서 왜 그런 조사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바른 지적이다.
나만의 생각이지만, 생 양파를 턱 내주는 음식점에는 머랄까, 일종의 자부심 같은 게 있다. 내 마음대로, 하얗게 잘라놓은 생 양파에는 전인미답의 옛날 남극점 같은,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순결함이 있다. 그 두 가지가 다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생 양파를 도무지 먹을 줄 모르는 사람은 음식 맛을 모르는 사람이라거나, 그런 뜻은 또 아니다. 양파를 익히지 않고 먹다니, 무슨 고대 인도 우화 같은 소리냐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그 말도 맞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저런 우여곡절의 인생을 살다 보면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언젠가는 생 양파와 마주치게 된다는 점이다. 어느 날 문득 식탁에 앉아 있는데, 종지 만한 하얀 접시에 생 양파가 올라와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생 양파를 즐기는 입맛과 그렇지 못한 취향 사이에 무슨 비의(秘義)가 숨어 있어, 인생이 둘로 나뉘는 것은 아니니까 안심해도 된다.
아무튼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순간을 어니언 코너(Onion Corner) 라고 부르는데, 생 양파를 경험하고 나면, 그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알싸하고 매캐한 생 양파가 얼마나 개운하고 달콤한지를 알게 되고 나면.
이 코너를 돌고 나면 내일은 오늘보다 좀 더 힘들 것이 뻔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일은 좀 더 수월해질 것이다. 힘들지만, 능숙해질 것이다. 별은 보이지 않지만, 천천히 흩어지는 구름이 이뻐 보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들을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납득 가능한 지점을 찾을 수도 있다. 피로에 끌려다니는 대신, 이상하게 잠이 많아질 것이다.
맵고 눈물나는 일이라도 꼭꼭 잘 씹으면 단맛이 난다. 물기가 마를 때까지 구석에 처박아 두지 말고, 아직 아삭아삭 할 때 씹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