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운 현실을 한 번에 뒤바꿀 수 없다는, 그 벽이 완고하고 두텁다는 차가운 현실 인식. 차마 그것을 없앨 수 있다고 자신하지는 못하고, 다만 그것을 넘어설 힘이 있었으면 한다는, 절망에 가까운 희망. 저 산을 다 밀어버리겠다는 포부도, 장애물을 한 번에 다 걷어내 버리겠다는 포효도 없이, 다만 기어올라가야 한다는, 체념인지 의지인지 구분할 수 없는 감정.
나이를 먹을수록 이것이 기쁨인지, 슬픔인지, 수동인지 능동인지, 각오인지 체념인지 구분할 수 없는 감정들이 점점 늘어난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미리 재단할 수가 없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를 테면 세상 기쁜 일인 줄 알았는데, 막상 시작하고 나면 점점 실망하게 되고, 실망스러운 결과를 받아 들고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그것이 또 다른 기회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판단은 유예되고, 즉각적인 반응은 줄어든다.
결론적으로 내 판단이나 감정이랑은 상관없이 세상이 저 혼자 돌아가는 것을 보면, 나는 아무래도 세상의 조연이나 엑스트라가 아닌가 싶다. 비유하자면 이야기의 일부, 20부작 드라마의 어디 한 편에 잠깐 등장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시리즈 중간에 잠시 삽입되는 스핀 오프 시리즈물의 듣보잡 주인공인가 싶고.
물론 내가 조연이나, 단역, 스핀 오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서 자존감이 낮아진다는 뜻은 아니다. 스스로를 살펴보면 자존감도 자신감도 높은 조연이다 보니 좀 다루기 힘들고, 때로는 감독이나 제작진에게 조연의 역할을 넘어서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할 때가 있어서 곤란하다.
사실 나 역시 현실의 벽이 얼마나 단단한 지 겪어보고, 원망하고, 적의를 품기도 하고, 환멸을 느낀 적도 있었다. 격렬하게 저항하고. 돌아보면 그런 쓰디쓴 경험을 통해서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게 되기는 했는데, 그것이 좋은 일이었는지, 체념으로 들어서는 길이 되어버린 것인지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
앞에 산이 있으면 다 때려부수자는 격렬한 적의와 원대한 계획, 아니면 다만 그걸 넘어설 힘이 필요하다는 체념과 의지 가운데 어떤 것이 더 나은 것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그런 감정이 들 때 윌 스미스는 교회를 찾지만, 나는 백지를 가져와서 문장을 만들기 시작한다. 키보드를 한참 두드리고 있으면 손과 손목이 놓여 있던 부분이 따뜻하다. 다정하다.
글을 쓰는 일이 무슨 대단한 노고나 탁월한 생각의 기록이 아니라고 생각한 지 오래 되었다.
외려 반대로 글 쓰는 일은 우리가 품고 있거나 꿈꾸고 있던 각오와 계획, 위대한 상상력을
세속에 물든 손으로 겨우 겨우 받아 적는 일에 더 가깝다.
그래도 그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뭐든 나오겠죠?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