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와 외삼촌까지 치매 가족력을 갖고 있었기에, 특히 외할머니는 고등학생 때부터 함께 살면서 중증 치매에 이르실 때까지 옆에서 살펴봤기에 증상이 비슷한 엄마도 치매라고 예단했다. 전문가도 아니면서.
교수님의 우울증 진단을 들으면서 대놓고 환호할 수는 없었지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우울증이 이렇게 반색할 일인가? 싶지만 엄마도 가족들도 예상치 못한 진단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세상 이렇게 해피하고 반가운 우울증 진단은 살면서 또 처음이다. 하도 믿기지가 않아서 재차 삼차 슬기로운 교수님한테 물어보고 진료실을 나온 이후에 다시 간호원에게도 물어봤다.
교수님 못지 않게 슬기롭고 친절한 간호원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 아니라는 듯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 주었다. 정년까지 열심히 일하신 분들이 퇴직 이후 무기력, 인지기능 저하 등 우울증을 앓는 분들이 많고 연령 특성상 치매처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가족들이 치매로 오해하고, 자세한 진단을 거쳐 우울증으로 진단명이 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차이가 있다면, 노인성 우울증 관련 증상은 치매와 비슷한 형태를 보이지만 훨씬 더 급격하게 진행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겨우 한두 달을 간격으로 엄마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엄마도 퇴직 이후 생각보다 많이 힘들고 무력감에 빠져 계셨던 것 같다. 자식도 남편도 별 도움이 안 되고, 막상 손에 놓은 일이 당신의 생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컸던 모양이다. 그래서 또 생각해보면 엄마랑 산책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이런저런 일과 관련된 주제를 다룰 때 엄마는 세상 멀쩡했다.
병원을 나서면서 엄마는 적어도 치료 가능한 병이라는 사실에 금새 태도가 달라졌다. 변하셨다. 집밖을 나서는 것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꺼리셨는데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자주 밖으로 나가신다. 교수님이 아무튼 최대한 바깥 활동을 권장하신 탓이다.
점심도 되도록 친구분들과 하시고, 이런저런 관광 모임에도 부지런히 참석하신다. 지지난 주에는 부랴부랴 영월에 갔더니 점심에도 볼 수 없었고, 저녁에 바로 친구 분들이랑 여행을 떠나셔서 딱 오분 밖에 보지 못했다. 엄마가 바쁘니까 말할 수 없이 기쁘다. 물론 인지 기능 저하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고, 여전히 우울증 때문에 무기력하거나 돌발적인 분노를 표출하실 때가 있지만 예전에 비하면 한결 나아지셨다.
할 수 있다면 다음 생에는 스웨덴 한림원 노벨 의학상선정위원으로 태어나 분당 국립 서울대학교 병원 김00 교수님한테 노벨 의학상을 드리고 싶다. 다만 언젠가 어느 아름다운 점성술가랑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는데요, 사람은 여섯 번 윤회하는데 안타깝게도 저는 이번 생이 여섯 번째 마지막 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김00 교수님이 다음 생에는 재벌집 막내 아들로 태어나 누리고 싶은 것을 다 누리실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더불어 어머니의 안부를 물어봐 주신 퐁당원 여러분,
모두모두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