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1시가 넘었다. 일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을 때, 일은 끝났지만 심신이 방전돼서 집에 갈 힘이 없을 때, 혹은 집에 다녀올 시간마저 여의치 않을 때 소파의 힘을 빌린다. 사무실 불은 모두 끄고 창문을 하나 열어서 사무실 공기를 바꾸고 음악을 틀어 놓는다. 책상의 조명을 켜면 사무실이 동굴같이 아늑하다.
쿠션을 베고 누워서 사무실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정든 소파는 물범처럼, 자신이 온 곳으로 나를 함께 실어 나른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해안선을 빠져나와 더 먼 바다를 향한다. 스피커에서 청량한 조난 신호 같은 음악이 깜빡깜빡 흘러나온다. 창문 밖으로 차들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소음도 파도 소리 같다. 나는 경계를 늦추고, 주머니에 들어 있던 물건들을 다 꺼내놓는다.
먼 바다에서 잡아 올린 카우치 소파 하나가 사무실 한 켠에 누워 있다. 가끔 해양생물 보호단체에서 사무실 앞까지 찾아와 카우치를 바다로 돌려보내라고 시위를 한다. 거짓말이고 세상에 지친 사람들이 한 번씩 와서 누웠다 간다. 2시간째 택시가 잡히지 않아 곤란한 에디터, 내일 아침 일찍 클라이언트 미팅이 있는데 아직도 시안 작업이 끝나지 않은 디자이너가 소파에 발을 뻗고 눕는다.
잠깐만 세 시간만 자려고요. 혹시 일어나지 못하면 좀 깨워주세요. 오늘 밤 세실 거죠? 나는 이 사무실의 환경미화원 같은 존재다. 일과가 끝나면 밤을 틈타 밀린 일들을 해치운다. 근데 나도 소파에 누워야 하는데… 제발 집에 가서 편안히 주무세요. 나중에 허리도 아프고 그럴 텐데. 몇 번을 권해도 다들 말을 듣지 않는다. 소파 쟁탈전에서 패하면 오늘 밤 나는 또 의자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해 한참 곤란하고 막막했던 누군가 그 소파에 하루를 의탁한 적도 있고, 열심히 뛰놀다 온 꼬마가 지쳐서 낮잠을 청한 적도 있다. 회사에서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큰 프로젝트를 처음 맡은, 이상하케(‘이상하게’의 강조 표현)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은퇴한 농구선수가 여름 밤 내내 소파에서 지내기도 했다.
시차가 맞지 않거나, 실연을 당했거나, 홧김에 일을 때려 치웠거나, 자료 파일을 집에 두고 와 망연자실한, 생각처럼 일이 진행되지 않아 화가 난 사람들도, 가끔 사무실을 찾는 요크셔테리어나 고양이도 소파를 찾는다. 요금제 같은 걸 도입해야 할 것 같다. 소파 테라피 같은 이름을 붙여서 체인점을 내고 기진맥진한 사람들이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하자. 이렇게 생긴 수익의 15%는 멸종 위기 동물인 물범을 위해 쓰고.
실패한 일과 이루지 못한 계획들을 곱씹으며
사람들이 한 밤 중에 가만히 소파를 찾아 눕는다.
내 어둡고 정든 소파 주위로 사람들이 떨구고 간 적의나 의심,
미련과 같은 감정의 탄피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어떤 잘못이나 후회는 아직도 식지 않고 따뜻해서
이상하지만, 가만히 손 안에 쥐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