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골든가. ‘황금의 거리’라는 뜻인데, 서울의 종로와 을지로를 연상시키는 낡은 거리에 작고 오래된 술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신주쿠를 스무 번 넘게 갔어도 굳이 골든가를 찾지 않았다. 그러다 2018년, 처음으로 골든가의 어느 바로 향했다. 후지산 옆 모토스 호수의 캠핑장에서 열린 호반영화제에 갔다가 일행이 골든가의 바를 가고 싶다 했다. 나도 아는, 알기만 하고 가보지 않은 바였다. 좋아하는 소설 <불야성>을 쓴 하세 세이슈가 홋카이도에서 처음 도쿄에 올라와서 알바를 했던 <심야+1>.
<심야+1>은 개빈 라이얼이 쓴 첩보물의 걸작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처음 바를 시작한 주인도 모험소설 작가였고, 배우이기도 했다고 한다.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은 골든가가 있는 신주쿠의 환락가 가부키쵸를 무대로 갱단의 암투를 그린 범죄소설이다. 아무런 희망도 없는, 악인들의 이전투구를 그린 소설.
술은 좋아하지만, 혼자 자주 마시는 편이 아니라서 서울에도 단골집은 없다. 하지만 골든가에 가면 단골집이 있다. 2018년에 처음 갔던 <심야+1>을, 이후 도쿄에 가면 반드시 들른다. 초라한 일본어 실력이지만 마스터하고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옆에 앉은 손님들과도 가끔 인사를 한다. <심야+1>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문화예술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와이 슌지의 영화 조감독을 만났고, <가면 라이더> 연출자를 봤고, 하세 세이슈의 소설을 담당했던 편집자도 봤다. 배우나 무용가도 만났다.
가게는 아주 낡았고, 작다. 바에 최대로 앉아도 7명 정도. 테이블 하나가 있다. 10명 정도 들어오면 꽉 찬다. 벽에는 오래된 영화, 연극, 공연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한쪽 벽의 책꽃이에는 오래된 소설과 에세이들이 있다. 좋아하는 작가 히라야마 유메아키의 소설도 있다. 그도 <심야+1>의 단골이라고 한다. <심야+1>에는 영화음악과 재즈가 주로 흘러나온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편하고 흥겨운 공간이다. 한 잔만 마시고 일어서려 하면, 한 잔을 더 주며 더 있다 가라고 권한다. 결국은 취해서 나오게 된다.
골든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시마 과장>에서였다. 1980년대에는 문화예술인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였다고 한다. 버블이 끝나며 함께 쇠락했다가 2010년대 이후에 관광객들이 도쿄의 옛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하여 많이 찾으며 부흥이 시작되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바에는 기존의 단골들이 여전히 찾고 있기에 독특한 아우라를 품고 있는 거리다. 골든가의 좁은 골목을 걸으면, 실내를 훤히 보여주면서 관광객이 선뜻 들어올 수 있게 유도하는 술집과 창문 하나 없고 오로지 간판 하나만 달고 단골손님들만 드나드는 가게가 함께 보인다.
조화롭지 않은, 그러나 서로 화해하기 양극이 함께 존재하는 골든가는 언제나, 자유롭다. 골든가가 배경인 <심야식당>의 마스터가 각양각색의 모든 이들을 따뜻한 음식과 함께 맞아주는 풍경처럼. 골든가는 언제 봐도 생기가 넘친다.
그녀를 아주 잠깐 보았지만 기억에 남았다. 그녀는 다음 여행지로 어디를 선택했을까. 지금은 어느 낯선 나라에 있을까.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일을 하며 그녀는 다음 여행지를 천천히 고르고 있을까? 약간 그녀가 부러웠다. 그녀의 삶의 방식이 그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