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을 하자면 이 글은 지난 2022년 12월 29일 출발해 오늘에야 이곳에 도착했다는 사실부터 설명해야겠다. 게으름을 피우거나 잊은 것이 아니라, 일찍 출발했는데 늦게 도착한 탓에 지난 12월 29일 퐁당통신이 먹통이 되었다. 눈이 한참 왔던 탓이다. 눈이 오면 문장들도 정체된다. 길도 얼어붙어서 거북이 걸음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문장은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피지컬한 존재들이다. 두껍고 무거운 것이 있고, 가볍거나 가느다란 것도 있다. 튼튼해서 사람들을 너끈히 실어 나르는 것이 있는가 하면, 허약해서 업고 다녀야 할 판인 것도 있다.
눈이 한참 와서 택시 앱과 실랑이를 하다가 포기하고 약속을 미루겠다는 연락이 왔다.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데. 팀장님, 출근 중이시죠? 눈이 너무 많이 와 가지고요, 네네 저녁 때나 되야 뵐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알았어요. 나도 한참을 기다렸는데, 약속한 문장들이 도착할 생각을 않는 것이다. 다시 전화를 걸어 다음 주에 보자고 내가 먼저 말을 꺼내야 했다. 할 수 없죠 머. 이것도 여지없이 변명 같이 들리지만, 사실 좋은 문장들이란 빨리 출발하고 늦게 도착하는 속성이 있다. 좋은 문장은 6시에 약속이 있는데 3시부터 나와 있는 사람 같다. 일찍 나왔네요? 많이 기다렸어요? 아니 방금 왔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좋은 문장에는 누군가 한참 앉아서 덥혀 놓은 의자와 같은, 어쩔 수 없는 온기가 배어 있다.
좋은 문장은 그래서 이야기의 정오 즈음 도착한다. 좋은 문장들은 새벽같이 일어나 내가 모르는 장소와 약속들, 실랑이를 거쳐 이제 겨우 나에게 당도한 것이다. 그래서 헤매다 온 문장에 남아 있는 흔적들, 생채기들, 냄새들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왔을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고.
눈이 한참 온다. 오늘은 틀렸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버스를 타러 간다. 정류장에 섰는데 버스도 소식이 없다. 기왕 늦은 김에 음악을 무선 이어폰에 연결하고 걷기 시작한다. 한남동 언덕배기를 넘어 하야트 호텔까지, 거기서 다시 소월길을 걷는다. 눈이 오니까 차도 없고, 사람도 없고, 스웨덴 사람들처럼 멀찍이 띄엄띄엄 서 있는 신호등 뿐. 이곳에는 나 혼자다. 나중에 더 나이를 먹으면 소월길 입구에 매표소를 만들어 입장료를 받으면서 살 작정이다. 나한테는 그럴 자격이 있다.
하지만 미리부터 불편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강아지 산책 시키러 나온 사람, 네 정거장 이상을 걸어온 사람, 두 시간 이상 일한 사람, 일주일 이상 일이 없는 사람은 입장료 무료. 이정선이 이끌던 *해바라기 1집, 2집, 엄정화의 노래 전부, 가수 *박광현의 노래를 한 곡이라도 좋아하는 사람도 모두 무료. 그 외에 다른 뮤지션들도 입장객 10명 이상의 추천이 있으면 무료 리스트에 올릴 생각이다. 가을에 은행나무 열매를 밟은 사람은 입장료를 반만 받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