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대만 일주 여행을 갔다. 타이페이에서 시작하여 타이중, 타이난, 카오슝, 화련, 이란 등을 돌아오는 10여 일의 여정이었다. 대만에 대해서, 알면서도 잘 모르고 있었다. 중학교 때 명동의 중국 대사관 옆 골목에서 일본 잡지 <스크린> 등을 사서 보고는 했다. 그러다 1992년, 한국은 중국이라 부르던 대만과 단교를 했고, 대사관은 새로 국교를 맺은 ‘진짜’ 중국이 쓰게 되었다.
허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1990)를 언제 처음 봤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92년 이후일 것 같다. <비정성시>를 보며 대만에도 우리처럼 참담한 역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장개석의 국민당이 대륙에서 쫓겨나 대만으로 갔고, 기존의 대만인들을 차별하며 억압하다 마침내 학살까지 있었다는 사실. 대만은 1949년에 계엄령을 선포하여 1987년에 해제되었다. 세계 최장의 계엄령이었다. 국민당 일당 독재 체제였다가, 2000년 민진당의 천수이볜이 총통이 되어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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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박정희가 총에 맞아 죽어 유신이 일단 끝났으나, 다시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1987년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진 후 소위 ‘민주당’이 처음 정권을 잡은 것은 1997년의 김대중 당선이었다. 한국과 대만은 비슷한 시공간대를 지나온 것 같기도 하다. 아니 대만은 엄청난 강대국인 중국과 대립하고 있으니, 그냥 비슷하다 말하기는 좀 꺼려진다.
이번 여행 전까지 대만에 대해 아는 것은 그 정도였다. 그래서 여행을 가기 전에, 이런저런 책들도 읽고 <반교:디텐션>과 <가타오> 같은 영화도 보고 그랬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아는 것은 아주 단편적인 것뿐이었구나. 정성공이라는 인물도 잘 몰랐다. 복명운동을 하다가 패배하고 대만으로 와서, 일종의 회유책을 내린 청에게 대만의 영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정성공의 도시라고 할 타이난에는 다양한 역사 유적들이 남아 있다.
그런데 정성공의 일대기를 보다 보니, 의문이 일었다. 대만을 ‘개척’했다고 하는데, 이전에 있던 원주민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대만 일주 여행에서 당연히 원주민 박물관도 가고, 역사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 미국의 서부 개척이 인디언-아메리칸 네이티브를 밀어내고 약탈했던 것처럼, 대만에서도 같은 과정이 벌어졌다.
대만 원주민을 보통 고산족이라고 부른다. 대만은 서쪽이 주로 평지이고, 동쪽은 높은 고산지대가 많다. 원주민들이 주로 동쪽 고산지대에 살게 된 이유도 있다. 보통 대만인을 본성인이라고 한다. 국민당과 함께 온 한족을 외성인이라고 부른다. 그동안 대만 내부의 갈등은 주로 본성인과 외성인의 갈등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만에는 정성공과 한족이 들어오기 전 이미 살고 있던 원주민이 있었다. 원주민들은 본성인을 침략자라 생각했고, 실제로 본성인은 원주민을 차별하고 침탈했다. 외성인이 본성인을 차별했듯. 그런 역사가 있다 보니 고산족은 보통 국민당 지지율이 높다고 한다. 적의 적은 친구가 된다.
대만 원주민 생각이 떠오른 것은, 얼마 전 일본 북해도의 하코다테에 일주일간 묵었기 때문이다. 하코다테는 과거 일본인이 북해도로 넘어오는 관문 도시였다. 북해도의 원주민은 아이누족이다. 하코다테 일부에만 살았던 일본인은 에도 정부 후기에 확대를 시작했고, 북해도를 ‘개척’하게 되었다. 이전 삿포로에 갔을 때, 곳곳에서 ‘개척’의 역사를 정리하고 홍보하는 기념물이나 건물을 보게 되었다. 애초에는 일본 혼슈에도 원주민이 살고 있었는데, 한반도 등을 통해서 들어온 야마토 부족이 영토를 차지하면서 밀려난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일본의 원주민은 원래 에미시족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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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솔저블루(Soldier Blue)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앨범 커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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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서부 개척, 한족의 대만 개척, 일본의 북해도 개척. 개척이라는 단어를 쓰면, 황무지나 밀림 같은 원시의 땅을 인간이 살 수 있게 개발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른바 ‘문명화’다. 어릴 때는 개척이라는 용어에 거부감이 없었다. 잘 몰랐다고 하는 게 좋겠다. 도시에만 살았고, 한국에는 소위 ‘개척’이라는 게 정말 황무지 개척 정도밖에 없었으니까.(정말인가. 잘 모르겠다. 어쩌면 지워진 역사가 있을지도 모른다.) <솔저 블루>와 <작은 거인>,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케빈 코스트너의 <늑대와 춤을>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 같은 수정주의 서부극을 보고, 서부 개척의 이면 혹은 진짜 모습을 알게 되면서 조금 달라졌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개척이란 말은 대부분 침탈한 자의 용어였다.
근대 이후 하나의 국가로 통합된 후 독립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스스로 무너진 사회주의 국가들이 강제로 묶었던 ‘연방’이 해체되는 것과는 다른 상황이다. 지금의 문명이 해체되고, 아포칼립스가 지나간 후 정도에야 인간이 평등해지는 것은 아닐까. 시간이 흐르면 그중 일부가 다시 지배계급이 되겠지만.
개척이라는 말이 아주 불편했던 것은 아니다. 승자의 말은 결국 집단을, 국가를 지배한다. 아무리 독립운동을 치열하게 했어도,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면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 기세등등한 시절을 살고있는 상황에서, 개척이라는 말은 그나마 중립적인 것은 아닐까. 승자의 생각과 주장만이 살아남는 세계는 언제나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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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김봉석 [씨네21] [브뤼트] [에이코믹스] 등의 매체를 만들었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쳤다. 대중문화평론가, 작가로 활동하며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내 안의 음란마귀』, 『좀비사전』, 『탐정사전』, 『나도 글 좀 잘 쓰면 소원이 없겠네』 등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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