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책과 책상, 컴퓨터를 옮겼다. 책을 둘 곳이 부족해서, 버릴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버리고, 버려서 책꽂이에 겨우 꽂을 수 있었다. 1차 정리가 끝난 작업실을 둘러보니 한숨이 나왔다. 더 버리자.
4년 전, 살던 집을 절반 크기로 줄였다. 이사를 생각하니 일단 책부터 버려야 했다. 그동안은 사는 공간이 점점 넓어졌고, 대부분은 책으로 채워졌다. 사는 공간의 크기가 줄면, 가지고 있는 물건들, 책을 버려야 한다. 그때 거의 70%의 책을 버렸다. 만화책은 거의 다. 소설은 10% 정도만 남겼고, 다른 책들도 절반 넘게 버렸다. CD도, DVD도 거의 처분했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이사한 집에 책을 넣을 수 있었다.
4년 동안 책은 다시 늘었고, 작업실 하나에 다 넣는 것이 불가능했다. 내가 무슨 영화(榮華)를 보려고 이 책들을 사 모은 것일까, 허튼 탄식을 하고픈 심정이었다.
취미는 영화 보고, 책 보고, 음악 듣고. 젊었을 때 돈이 생기면 바로 서점에 가서 책과 CD를 샀다. 더 어릴 때는 용돈으로 오로지 영화를 보고, 책과 음반을 샀다. 음식이나 군것질하는 돈이 아까워 집을 나가면 아무것도 사 먹지 않았다. 지금도 극장에서 팝콘을 거의 안 먹는 이유는, 진지한 관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습관 때문이다. 어릴 때 극장을 가면,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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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ibrary (1850-1866) Georg Reimer (German, 1828-18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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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되고, 글을 써서 먹고 살게 되면서, 책을 사는 일은 직업의 연장이었다. 기사와 칼럼을 쓰기 위해 참고가 될 책이니까,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도움이 될 책이니까, 일단 사면 자료 가치가 있는 책이니까, 등등으로 엄청나게 책을 샀다. 일본에 가면 캐리어 가득 책을 사오기도 했다. 일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책이라고 믿었다. 인터넷으로 많은 자료를 구할 수 있지만, 여전히 책으로만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생각이 있다고 믿었다. 그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책만의 가치는 분명하게 있다. 다만 상당히 큰 역할이 인터넷으로 넘어갔다.
작은 집으로 이사하면서, 과거처럼 책을 사지는 않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욕심이 있었다. 언젠가 필요할 책들을 다시 모으고 있었다. 언젠가 필요할 때 꺼내볼 수 있는 책들을 소장하고 싶었다. 그런데 부질없었다. 많은 책을 소장하려면, 무엇보다 공간이 필요하다. 커다란 집이나 사무실을 평생 소유할 수 있는 돈이 먼저 필요하고,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거기에 투여해야 한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내가 어떤 학자들처럼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연구하며 나만의 사상을 담은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럴 능력이 있다고 해도, 과연 나는 그러고 싶은 것일까?
아니었다. 그저 내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작게 만들어내고 싶을 뿐이다. 매순간 필요한 것을 찾아가며 만들자고 생각했다. 절반 가까운 책을 버리고도 더 버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책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 할 것 같았다. 일단 남겨둔 책은, 적어도 한 번 들춰보고 읽은 후에 버리자.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놓아주고, 가볍게 살아가다 떠나고 싶었다. 아직은 현실감이 없지만.
세상이 변한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것이 넘쳐나서, 오히려 끝없는 갈증을 느끼는 시대. 번드르르한 것들 사이를 스치면서 자신이 소유했다고 만족하다가 결국은 공허해지는 세상. 진짜 욕망이나 행복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가짜라도, 나에게 소중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만 소중한 것을 찾아내는 자신만의 눈이 점점 퇴화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의심이 가기는 한다. 선택지가 너무 많다 보니, 늘 선택의 가능성만 열어두고 돌아서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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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김봉석 [씨네21] [브뤼트] [에이코믹스] 등의 매체를 만들었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쳤다. 대중문화평론가, 작가로 활동하며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내 안의 음란마귀』, 『좀비사전』, 『탐정사전』, 『나도 글 좀 잘 쓰면 소원이 없겠네』 등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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