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생각하고 3박 4일 ‘샤이닝’을 카피했더니 좀 낫다. 서툴기 그지없는 기타로 허겁지겁 따라갔는데도, 과분하게 아름다운 곡이다. 이 아름다운 노래, 목소리, 이야기. 보탤 것도 없고, 생각할 것도 없고, 다만 열심히 따라가는 것 외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나의 기타는, 손가락은 그녀의 노래를 받쳐 주기에는 보잘 것 없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내가 따라올 수 있을 때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노래를 부른다. 몇 번이고.
이 가슴속의 폭풍은 언제 멎으려나?
바람부는 세상에 나 홀로 서있네.
내 말이. 지글지글 끓고 있는 괴로움은 언제 끝나나요? 병이다, 유전이다, 습관이다, 대답을 듣고 싶다. 드러누울 정도로 아픈 것은 아닌데 내 마음 속에는 냄비가 하나 끓고 있다. 아예 뜨거워서 냄비까지 홀랑 타버렸으면 좋겠는데 그럴 정도는 아니고, 내 마음의 냄비에 물이 다 졸아들면 또 누가 한 컵 물을 부어 끓인다. 지글지글 괴롭다.
하지만 괴로움도 오래되니까 요즘 들어서는요, 이 괴로움은 그냥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쫌 이상한 말이긴 한데, 사람이라는 현상은 어쩌면 더 긴 안목으로 보면 생명의 순환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중간 과정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이유도 없는 외로움, 살아있다는 괴로움
나를 안아줄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아메바 같은 것에서 시작해서 사람이라는 개체로 지내다가 풀이나 비에 섞여서 숲도 되고 바다도 되고. 사실 우리가 깨닫지 못하거나, 깨달았으면서도 인정하지 못해서 그렇지, 사람은 일종의 동충하초 같은 것일지도. 균을 품고, 균에 조정 당하며 살던 곤충들이 마침내 동충하초가 되는 한 생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