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서 지인과 대화를 하다가 그 이야기를 했다. 예술을 하는 그는, 반대로 말했다.
내 주변에는 INFP가 아주 많던데.
아마 그럴 것이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아는 예술가들에게 물어보면 꽤 비율이 높지 않을까. INFP와 ENFP. 일반적인 직장을 많이 다닐 유형은 아니지만, 예술가나 프리랜서에서는 오히려 비율이 높을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자신의 MBTI는 간이 테스트를 통해 얼추 찾아낸 정도다. 시간이 흐른 다음, 다시 테스트를 하면 바뀌기도 한다. 한 사람에게 둘 중 하나의 유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유형이 적당히 혼재된 경우도 많다. 한 타입이 좀 더 강한 정도. 그리고 후천적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사람은 변하기도 하고, 지독하게 변하지 않기도 한다. 저마다 다르다.
I와 E를 놓고 말한다면, 나는 심한 I에 가깝다. 에너지가 떨어지면 반드시 혼자 있어야 채워진다. 계속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에너지가 고갈된다. 뭔가를 하고 싶거나 관심이 갈 때는, 대체로 혼자서 찾아가고 파고든다.
대학 시절 사설 시네마테크가 생겨나며 인기를 끌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영화잡지와 영화사 책에서만 볼 수 있는 고전영화와 최신 예술영화들을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문화학교 서울, 씨앙씨에, 영화공간 1895 등이 유명했다. 대체로 회원제였고, 모여서 영화 스터디를 하는 곳도 많았다.
당시의 나는 꽤 영화를 좋아했고, 영화 이론서도 많이 읽었다. 당연히 시네마테크를 가고 싶었다. 그런데 유명한 곳은 원치 않았다. 나는 서울에 있는 시네마테크를 다 알아봤고, 가장 사람이 적을 곳을 찾았다. 집에서 멀고, 혜화 지하철역에서도 한참 걸어가야 하는 영화사랑이라는 곳을 택했다. 회원제이지만, 사람이 적으니 모임도 없고, 스터디도 없었다. 나는 혼자 영화를 보러 가서 서너편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영화를 보는 공간은 대체로 사람이 적었고, 그중 누구하고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잡지의 기자가 됐다. 여전히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 직장에 다니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영화를 매개로 싫어하는 것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존하려다 보니 최소한의 E를 장착하게 됐다. 사회적 기준으로 본다면 여전히 바닥권의 E였지만, 나로서는 꽤나 애쓴 E였다.
MBTI를 신봉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을 알기 위한 창문으로서는 나름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성격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성격도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단지 유형을 설명하는 것이니까. 이미 존재하는 것을 좋은 방향이나 나쁜 방향 어느 하나로 쓰는 것은 결국 내가 결정할 일이다. 세상이 나를 만들었어도, 행동은 내가 선택한 결과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가도, 힘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아니 있지만 감내할 수 있는 정도다. E가 많이 성장했고, 그것이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또 도움도 줬으니까.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아주 느리게라도 변해간다. 내가 원한다면. 내가 걸어간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