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알았고, 한때 친했던 친구지만, 삶의 많은 부분이 달라지면 멀어지기 마련이다. 혹은 원수가 되기도 한다.
젊은 시절의 나는, 친구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간은 아니었다. 자립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다. 혼자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누구도 믿지 않고 아무의 도움도 받지 않고 생존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친구는 있었다. 하지만 사회적 관계를 만드는 것은 생존의 다음 순서라고 생각했다. 기브 앤 테이크로 친구에게 받은 것을 주겠지만, 되도록이면 주지도 받지도 말자는 주의였다. 나 혼자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 후에야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이기적이었고, 유치한 생각이었다.
나이가 많이 들면서 바뀌었다. 나 혼자 살아남는다는 생각은 무척이나 어리석었다. 중년이 될 때까지 혼자 버티며 꾸역꾸역 살아왔다고 믿었지만, 타인의 도움과 배려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거나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호의와 나의 노력과 별개로 움직이는 운을 통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게 진실이다.
얼마 전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봤다. 주인공 마히토는 전쟁 중에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동생과 재혼을 했다. 착하고 예의바른 마히토는 누구에게도 반항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 울분이 있다. 집 근처에서 만난 왜가리는, 큰아버지가 만들었다는 탑으로 들어가면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왜가리를 따라 들어간 이세계에서 마히토는 기상천외한 모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나 자신의 새로운 세계를 다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참혹한 세계에서 나의 악의를 인정하며 친구를 만들고 꿋꿋하게 걸어가야 한다고.
이천에서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세상은 결국,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친구를 만들고 함께 걸어가야 한다. 어떤 관계라도 좋다. 아내나 남편, 스승과 제자, 친구도 좋고 성별, 나이, 인종과 국적 무엇이라도 좋다. 함께 걸어갈 수만 있다면 좋다. 바로 옆에 있지 않아도 되고, 언제나 나를 이해하지 않아도 좋다. 가끔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정도로도 좋다. 그것이 아마도, 미야자키 하야오가 던진 질문의 답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