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를 먹으면 사람도 중고차처럼 운행 거리가 길어질수록, 가속이 뛰어난 악셀보다 말을 잘 듣는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낡은 중고차는 제동거리가 길어져서 브레이크를 밟아도 한참을 미끄러지는 것이다. 하려던 말, 가고 싶은 곳, 닿고 싶은 사람, 별이 가리키는 방향을 벗어나 어두운 들판을 헤맨다. 눈 앞이 어두워진다. 나이를 먹으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이 의도에서 저만치 벗어나는 일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다고.
요즘에는 예고도 없이 새벽에 배달 트럭이 와서 문장들을 내려놓는 경우도 많다. 아니 한참 일하고 있는데 이러면 곤란한데요. 게다가 주문한 것과는 영 딴 판인 문장이 한 두개가 아니다. 어떡하죠? 어떡하긴 저기 매대 구석에 두었다가 재고 처리하면 돼. 부탁이니까 내 눈에 안띄게 해라. 문장들도 말을 잘 듣지 않아서 고치기도 어렵다. 화난 거 아니지? 아닌데요? 왜요? 그러면 줄을 좀 맞춰주면 안 될까? 왜요? 짜피 다 똑 같은데 굳이?
‘아아 쫌!!’ 하고 소리치고 싶은 걸 참는 일. 문장은 그런 거다. 글쓰는 일은 감정적인 헌신을 요구한다. 질투도 많아서 다른 일과 견주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 줄도 모르고 별빛을 따라 길을 나섰다가 엄하게, 이 가게 네온사인에 홀려서 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배고프고 지쳐서 타협한 것이다.
아득한 별빛을 따르는 것에 비해 좀 더 손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만만치 않다. 만만해 보여? 어? 전에는 따져 묻고 추궁하고 화내고 그랬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또 그러는 일이 없다. 인격이 성숙해서는 아니고 병원에서 적절한 처방을 받아서 그렇다.
치료받아야 할 분이 병원을 가지 않으면 괜히 그 울분을 받아 내느라 그 곁의 사람들이 병원을 찾게 되는 거예요. 고백하자면 어느 회사의 상담 클리닉 선생님을 일로 인터뷰하다가 오프 더 레코드로 그런 이야기를 듣고는, 난가? 싶었네요. 뜨끔했다.
물론 나만 특별히 그런 건 아니다. 문장을 다루는 일에 연루되면 문장의 밀도나 거리에 관계없이 자아가 부풀어 오르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러다 버블 팝! 하고 터져 버린 자아(ego)를 본 적이 여러 번이다.
가게 앞에 월남쌈 시키면 딸려 나오는 라이스 페이퍼 같은 게 넓게 흩어져 있을 때가 있는데, 그게 자아가 터진 흔적이다. 저도 처음에는 뭔가 싶었는데요. 아무튼 그렇게 자아가 터져 버린 사람들은 살도 찌고, 한동안은 말도 더듬게 됩니다. 땀도 많이 흘리고요.
어째서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문장을 다룰 때는 각오가 좀 필요한 것 같긴 하다. 각각의 자아에도 용량이 있는 것이다. 들리는 풍문에는 리터 단위라는 말도 있고, 압력을 측정하는 파스칼(Pa N/m2)로 잰다는 말도 있는데, 기준치는 잘 모르겠다. 문장은 수은이나 납처럼 밀도가 높고, 일단 인체에 흡수되면 몸 밖으로 배출되지 않고 축적된다는 것.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가 전부다.
자 이제 일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