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존재가 되어보니 알겠다.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보니 알겠더라. 학생, 직장인, 가족, 사장님, 학생주임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전선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국영수는 말하자면 전략적 요충지다. 다들 전쟁 중이고, 전쟁 중에는 피아 구분이 필수적인데, 나는 전선에서 이탈한 탈영병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피아 구분을 할 수 없으니 곤란하다. 이해한다.
다만 도서관에서 죽치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었는데, 학생증이 없는데 주민등록중도 아직 없으면, 보호자를 데리고 관공서를 방문해 가족관계증명서나,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아야 하는데, 나한테는 어른이 없는데, 차라리 그냥 빌려주기 싫다고 그래!!! 화가 났다.
분노의 좋은 점은 도덕이나 윤리와 등가 교환된다는 것. 도덕이나 윤리가 일정한 준거 집단과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반면, 분노는 그것에서 탈선하거나 열외된 자들에게 일종의 신용 대출 같은 것을 제공한다. 특별한 담보가 필요 없는 대신, 분노를 갖다 쓰기 위해서는 자기 신용을 저당 잡혀야 한다. 그때는 몰랐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나 자신을 더 이상 믿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아 그때 나의 그 들끓는 분노가 스스로를 먹어 치우는 일이었구나, 깨달았네요.
그러나 그때 나는 분노에 스스로를 저당 잡히고, 도서관을 비롯한 모든 것에 화를 내고 있었다. 마침 도서관에는 겨울이 오고, 난로를 피우려면 연통이 필요해서, 공공 도서관은 창문 하나를 1/3쯤 열어 두어야 했다. 나는 책을 빌릴 수가 없어서 훔치기로 마음먹었다. 창밖으로 마음에 드는 책을 닥치는 대로, 창문 틈으로 던져 놓고 미리 준비해 놓은 더플백에 그것들을 담았다. 읽었다. 지금도 나의 책장에는 맨 뒷장에 도서 대출 카드가 꽂혀 있는 오래된 책들이 있는데, 다 그 겨울을 증빙하는 기록들이다.
그 책들이 없었으면 나는 무엇이 되었을까. 티베트어 전문가나 자작나무 심리치료사가 되었을까. 잘 모르겠다. 그때 훔친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책에는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는 것들을, 보이거나 들리게 하는 힘이 있다. 아직도 거기 있다.
탈영병으로 지내다가 순식간에, 시간이 지났다. 나는 일상으로 복귀해서 휴일을 맞이한다.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지만, 휴일의 마지막 순서는 빨래를 개는 일이다. 수건을 접어서 아코디언 연주자처럼 가슴에 품고 샤워실 서랍장에 당신께서 정하신 순서대로 채워 넣는다. 아멘. 상의와 바지는 옷걸이에 걸어 옷장에, 속옷과 양말은 플라스틱 사물함에 넣는다.
이렇게 정돈이 끝나고 나면 한 주 동안 누적되었던 엔트로피 수치가 낮아진다. 지구의 온도가 백만 분의 1이라도 낮아진 것 같은 기분이다. 모래사장으로 올라와 기진맥진 누워 있는 고래들을 달래서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고, 아끼는 책을 딱 두 페이지만 읽는다.
이 책에는 가름끈이 없어서 누군가 새해 인사를 적어 보낸 카드를 읽다 만 페이지에 꽂아 놓았다.
안녕하세요? 조금 늦었지만 새해 인사 드려요. 작년 파티에서 찾아뵙고 벌써 이렇게 한 해가 훌쩍…2024년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새해 복도 많이 받으세요.
추석인데 설날 안부 엽서를 굳이 읽고 있는 것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나에게 건네주는 모든 안부를 몹시 사랑하기 때문이다. 추석 때 누구 하나 안부 인사가 없어서 이 글을 적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적시해두고 싶다. 이렇게 적고 보니 사실 적시 명예 훼손에 해당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만.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