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적어 놓으니 내가 무슨 넘쳤다 물러나는, 물때를 관장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먼 바다에서 올라와 사람의 몸을 입고, 사람의 마음에 부역하고 있으니 마땅히 내 몫의 환멸도 받아들여야지. 어쩌면 도망치는 것보다 정해진(?) 환멸을 받아들이고 괴로워하는 것이 외려 인간됨에 순종하는 것이 아닐까?
처음에는 모서리가 뾰족하게 돋아나고 거기에 마음이 긁히고 다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모서리도 둔탁하다. 빛나는 예각도 없이 마냥 둥글둥글 자욱한 것이 무슨 이끼 같다. 미끄럽긴 하지만, 덕분에 넘어져도 좀 덜 다친다. 이상하지.
이상하지. 세상을 향한 걷잡을 수 없는 환멸에도 손잡이도 달리고, 끈도 달렸다. 이제 내가 거느리고 다니는 환멸은 얼핏 기념품처럼 생겼다. 나의 환멸은 모서리도 닳고 낡아서 부딪힌다고 해도 전처럼 아프거나, 상처 입는 법이 없다. 미안합니다, 지나갈게요, 약간의 예의는 필요하지만. 멀리서 보면, 아니 가까이서 봐도 키링처럼 생겼다. 가방에 달고 걷고 있으면 청량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언제 이 환멸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내가 환멸 발전소도 아니고 당연히 환멸도 멈춘다. 아무튼 요즘은 오래 묵혀둔 환멸을 패키지만 바꿔서 다시 배포하는 수준이다. 컬러도 이전이랑 조금 차이가 있고, 봉제선도 달라졌는데 사람들만 여전하다. 약속을 정하고 찾아와서 나의 환멸을 한 움큼씩 덜어내 가져간다.
나에게 호의나 연민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이상하지, 그들이 나의 환멸을 덜어내 갈 때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을 도통 이해할 수 없는데도 나는 요즘, 호의를 감추기가 어렵다.
약속한 사람들이 돌아간다. 절차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약속들이 실현되고, 이야기가 채택되고, 컵과 접시가 잔뜩 쌓였다. 격렬한 이야기의 탄피가 곳곳에 떨어져 있기도 하다. 긴 해안선을 따라 쌓였던 기분 좋은 소음들, 이야기들이 조용히 바다로 돌아간다.
여전히 나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질문에 휩싸여 고립되어 있지만, 의문투성이지만, 해안에 상륙했다가 돌아가는 사람들, 그이들이 뒤에 잔뜩 남겨두고 간 다정하고 내밀한 정적을, 나는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