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밀도가 높은 어른은 위인과 구별할 수, 없다, 인내와 존중, 깊은 성찰과, 품격, 어른됨의, 허들이 이렇게, 숨가쁘고 가파르고 아득하니, 어른이 없다, 희박하다는 소리가 나올 밖에. 물론 나도 그런 훌륭한 어른이 존재하면 환영이지만, 나 같은 사람은 숨만 쉬어도 어른 미달, 어른 곤란일 것 같다. 싫다. 그 기준이 너무 혹독해서 어른을 무슨 영물(靈物)이나 지정 문화재처럼 격상시키는 일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동의하기 어렵다.
나는 어른의 정의가 조금 더 완만했으면 좋겠다. 사실 어른이 된다는 건, 이미 어느 정도 비관적인 부분을 받아들여야 하기에, 숨가쁠 정도로 압박하면 도망하고 싶어진다. 이미 어른은 저마다 각자 통증을 껴안고 사는, 싫어도 그 통증이 안내하는 길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니까. 오직 그 통각(痛覺) 말고는 스스로의 어른됨을 검증할 방법이 없을 때도 있으니까.
말이 먼저 튀어나왔으니 말인데, 어른은 미래나 희망 같은 것에 기댈 수가 없다. 그냥 간다. 가야 하니까 간다. 그래서 가끔 이 고통 말고는 내가 지금 살아 있구나, 가고 있구나를 상기시켜 주는 유일한 감각일 때도 있다. 이 고통이 그나마 나의 인간됨을 증거하니까 참는 거다. 가는 거다.
조금 더 젊었을 때는 고통이란 건 사랑하면 다 막 치유되어야 마땅하고, 공유하면 희석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아무리 사랑해도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내 준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통 때문에 각자 외로워지지만, 누구도 탓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 그 때가 되면 어른이 되어 버린다. 되어야 하니까 된다.
지금부터 네가 저지르는 잘못은 되돌릴 수 없다. 어설픈 열망과 각오가 너의 초원을 먹어 치우고, 오늘부터 이 사막이 유일한 너의 몫이다, 오늘부터 네가 저지르게 될 잘못들이 너의 이름이다. 너의 정체성이다.
이제부터 저지르는 잘못은 되돌릴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만회할 길이 없겠구나, 서늘한 생각이 어깨 위에 앉을 때, 스스로에게 줄 쿠폰도 포인트도 더 이상 없을 때, 더 이상 관대할 수 없을 때, 나는 누군가를 구할 수도 없고, 없었고, 그들의 생애를 조금이라도 바꿔놓겠다는 오만이, 만용이 숨 죽을 때, 어른으로 눈을 뜬다. 일어나 이불을 개고 밤새 자라난 수염을 깎으며 창문을 열어 후회를 털어낸다.
이제부터 저지르게 될 잘못들은 용서받을 수도, 용서해줄 사람도 없다는 외로움. 그러니까 어른은 좀 쓰다. 누구를 탓할 사람이 없다는 걸 아니까, 이해나 용서가 사람의 힘이 닿지 않는 곳에서 정해지는 일이라는 걸 아니까, 알게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