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약속을 생각하니 소파는 더 아늑하고, 다정하다. 사람이 그립지는 않은데, 함께한 시간들은 좀 그립고. 전에는 그 둘을 구분할 수 없었지만, 그게 다른 일이라는 걸 안다. 좀 허탈하지만, 굳이 걷어차지만 않으면 배우는 감각이란 것도 있다.
자고 일어나도 시오니스트들이 쏘아 올린 미사일은 남의 집과 마당을 유린하고, 능소화는 눈치도 없이 피어날 것이다. 야구 경기와 달리 폭우가 쏟아져도 저녁 약속은 속행될 것이다. 아직 일이 남았다고 할까. 누가 아프다고 할까. 이를테면 샤워하다가 넘어진 윤동희 때문에 열이 뻗쳐서, 시즌 중 부상 이탈한 선수들 때문에 화가 치밀어서, 근데 롯데 자이언츠가 너랑 무슨 상관인데?
친구들의 의심과 타박까지 시뮬레이션 하고, 적당한 핑계가 바닥나서 터벅 횡단보도를 건넌다. 알어, 앞이야. 사람들이 일제히 담배를 피우고 있어서, 구조대를 향해 피워 올리는 연기 같다. 자욱한 조난 신호를 비집고 들어가자 제법 널따란 공터가 나타난다.
뒷집이 앞집을, 앞 집이 옆집을 들이받아서 꼭 연쇄 추돌 현장 같은, 오래된 상가. 중식당 간판은 고깃집 뒷문 위에 붙어 있고, 고깃집 상호는 그 앞 국숫집 간판에 딱 붙어 보이지 않는다. 한 지붕과 처마를 잇대고 창문은 다방인데, 문은 철물점으로, 윗층 국밥집은 넘어져서 철물점을 간판을 덮었다. 골조를 드러낸 기둥, 기름 때가 들러붙은 창문들, 이미 한참 취해 있는 친구들과.
나는 정신이 말똥말똥해서 무슨 피의자 같다. 그게 뭐든 기름에 볶아 내겠다는 기이한 집념과 연기 때문에 식당 내부는 뿌옇고, 아는 얼굴, 아는 이야기들, 해묵은 잘못들이 안주처럼 테이블에 놓인다. 이곳이 아직 일식 주점이었을 때 닭 날개 튀김에 금속 인식표가 섞여 나온 적이 있었다. 그보다 더 전에는 라면 육수에서 두꺼운 유리 조각이 발견되었다. 친구의 말로는 그건 자동차 선루프의 일부라는 것이다. 야, 이건 자동차 유리에 쓰는 일련 번호라니까?
중고차를 푹 삶아서 라면 국물 베이스를 만든다는 꺼림칙한 결론 대신, 우리는 가지 튀김이며, 청경채 같은 요리만 시킨다. 이 골목에는 무엇 하나 제자리에 놓여 있는 것이 없고, 어지간한 잘못은 큰 흠결이 되지 않는다. 가끔 식당 문 앞에 폴리스 라인을 치고 모조리 취조하고 싶을 때가 있긴 하지만, 개업 축하 화분을 하나 사서 식당 카운터 위에 놓아 두고 왔다. 난데모 초순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