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에 앉거나 누워서 구슬프게, 때로는 토해내듯이 우는 기타 소리를 들으면, 세상살이가 앞으로 고달파 지리라는 것과 오랫동안 그 괴로움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랜디 아버지는 블루스를 주로 연주하는 분이셨던 같다. 주로 밤에 어딘가에서 연주를 하면서 벌이를 하시는 듯 싶었다.
그게 나의 첫 번째 기타 수업이었다. 랜디와 나는 랜디 아버지에게 기타를 배웠다. 둘 다 재주가 없어서 베이스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나는 뭐 랜디랑 기억에도 남지 않는 하찮은 일로 싸우고는 왕래가 끊어져 기타 수업과도 금방 멀어졌다.
랜디는 아버지에게 기타 수업을 그 뒤로도 꽤 오랫동안 배웠다. 언젠가 비슷한 친구들을 모아 무대에 서기도 했다. 나도 공연을 보러 갔는데, 꽤 그럴 듯 했다. 다행히 아버지의 고달프고 애린, 음악은 아니었고 아주 건설적인 하드록을 카피했길래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 기타 수업은 어떤 노래하고 기타 치고, 건반도 다루는 여자분이 선생이었다. 누나였다. 지금도 음악을 계속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이 예쁘다고는 못하겠다. 예쁜 얼굴은 아니다. 누나의 남편을 닮았다. 그러게 왜 그때, 세상에 불만이 있으면 음악으로 풀 것이지, 결혼과 출산으로 갑자기 급발진했을까.
미안했는지, 다른 선생님을 연결시켜주었는데, 그 선생님도 자꾸 수업을 취소하거나 연기해서 나도 곧 그만두게 되었다. 나에게는 편견이 하나 있는데, 연주를 잘 하는 기타리스트들은 다 호봉 높은 공무원들처럼 어깨가 말렸다는 것이다. 구부정하다는 것이다. 공무원처럼 한 자리에서 기타만 치면서 어깨에 싹이 돋을 지경까지 연습을 해야 좋은 음악이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튼 나는 그런 공무원 같은 기타리스트들을 사랑하고, 그런 기타리스트들은 무슨 음악을 하건, 조금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더라도 천국에 가서 연금 같은 걸 받았으면 좋겠다.
얼마 전에 나의 세 번째 기타 수업이 시작되었다.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는 분주하고 일도 잘 하는데, 참 나랑은 맞지 않는 동료 에디터의 소개로 함께 수업을 듣게 되었다. 나는 그냥 기타 줄을 튕기는 것만으로도 좋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도 천국 어딘가에, 연금까지는 아니더라도, 약간의 해피 포인트 정도는 적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이 세 번째 기타 수업이 무사히 끝나고, 내가 그래도 한두 곡 정도 익숙하게 다룰 수 있는 곡이 생기면 좋겠다. 아무에게도 들려주지 않고, 그냥 내가 그 곡을 반복해서 몹시 들어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