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면 언제나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을 걷고 있는 것이다,
공기는 푸른 유리병, 그러나 어둠이 내리면 곧 투명해질 것이다, 대기는
그 속에 둥글고 빈 통로를 얼마나 무수히 감추고 있는가!
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들을 숨기고 있는가
- 기형도 <어느 푸른 저녁> 중
PT 현장에서 처음 20분 간 나는 내 발견을, 이 기쁜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리느라 군데군데 강조하기도 하고, 흥분하기도 했지만, 오래지 않아 내가 가진 열망의 뾰족한 모소리들이 뭉툭해졌다. 평평해졌다. 말을 멈추지도 않았고, 큰 실수는 없었지만 나는 안다.
끓어오르는 확신의 자리에서 내가 방금 내려왔다는 사실을. 내려오니 문득 크고 무거워 보이는 회의 테이블에 비둘기처럼 둘러 앉은 사람들의 표정이 보인다. 다들 낯선 사람들이다.
어줍지 않게도 내가 나의 꿈이나 열망에 이 모든 사람들을 연루시키는 게 합당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고. 문득 배경으로 놓여 있는 창문이 너무 비좁다. 텅 빈 회의실 안에 이 비좁은 창문을 쳐다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자신들의 상념을 달래고 있을까.
창문을 보면서 나 역시 날씨가 사나워서 오랫동안 산책을 못했다는 생각부터 든다. 겨우 날씨에 좌우되는 삶이 뾰족해봤자 얼마나 날카로울 것이며, 둔탁해진들 그 요철이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이곳의 사람들은 저마다 꿈의 용적율을 몇 퍼센트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왜 사람들은 꿈이며, 욕망에 자신을 내어주고 기꺼이 스스로를 탕진하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있는 누구의 삶이든, 묘사하려고 들면 세 줄 이상이 필요할까?
삶이 신비롭고 영원한, 미지의 영역이라는 말에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지만, 지금은 어쩌다 보니 완전한 확신의 자리에서만 겨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그 모든 불확실하고, 의심스러운, 미지의 순간들을 연료로 불태워 단 한 순간의 확신을 거머쥐는 데 모조리 써버린 모양이다.
아이러니컬하지만, PT의 내용에는 대부분 확신의 바깥, 불안의 언저리로 걸음을 내딛자는 크고 작은 권유가 담기기 마련이다. 약속되지 않은 시도, 시도되지 않았던 방법을 선택하자는 권유가 약간의 경험과 솔루션과 더불어 펼쳐진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안힌 길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평평하고 안락한.
어떠셨어요? 지금까지 저희들이 준비해온 제안 내용을 함께 살펴봤는데요.
그럼, 궁금한 점 있으시면 편안하게 말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