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지금은 아프다 싶으면 공습경보처럼 시끄러운 사람이 되어 버렸는지, 인생은 참 알 수가 없다. 다만 ‘엄살러’로 살면서 깨달은 것이 한 가지 있다면 엄살이 고통을 적절하게 희석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특히 나를 살아 보니, 어째 나는 밖으로 내뱉지 않으면 스스로의 고통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스스로에게 둔감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내가 유독 혼자 있는 밤이나 새벽을 남들보다 좋아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잡음이 없는, 일종의 진공상태와 같은 환경이 아니면 나에게는 나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이다. 한때는 이런 스스로의 성향을 제 멋대로 해석해, 나는 밤도 잘 지새우고, 잠을 좀 덜 자도 컨디션을 잘 유지하는 편이라고 야무지게 착각한 적도 있었다. 아마도 하느님이 나한테는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밤을, 여분으로 남겨준 것 같다고.
사실은 그저 남들보다 더 빨리 내 몫의 밤을 소진한 것일 뿐인데. 마침내 남아 있는 밤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요즘은 밤을 잘 버티지 못한다. 무리하면 몸이 이곳저곳 아프다, 힘들다. 밤을 당겨쓰면, 높은 이자가 붙는다. 남아 있는 밤을, 새벽을 잘 할애해서 꼭 필요한 곳에만 쓰라는 뜻이다. 오늘 밤은 밖의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부어주고 돌아와 오래 전 봄날 벌어진 농구 준결승전을 생각한다.
1분이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수비 리바운드를 하자마자 코트 끝까지 미친 듯이 달렸다. 종인이 형이 프리 드로우 라인 근처에서 상대 팀의 주의를 끌다가, 수비수 사이로 멋진 패스를 건넸다. 덕분에 골 밑이 완전히 비어 있었다. 손쉽게 역전 골을 넣었다. 우리는 곧바로 상대가 하프라인을 넘지 못하도록 밀어붙여 경기를 끝냈다. 이겼다. 농구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헹가래를 받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같이 농구하던 그 선형이 맞지? 연락이 닿아 그의 SNS를 들여다보니 아침 일찍 일어나 사무실까지 걸어가 하루를 시작하는 이야기가 성실하게 올라와 있다. 그를 통해 아침은 누구에게나 완전히 새 것이고, 그래서 참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는데.
새벽같이 일어나 해안 도로를 걸어가, 매일매일을 정성스럽게 맞이하고, 준비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불만이 없다. 불만이 있을 리가 없는데. 아무 힘이 없는 말이지만, 나의 이 엄살을 조금만 나눠줄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