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를 끝내고 나니, 문득 지천명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서른에 뜻을 세우고, 마흔에 흔들리지 않고, 쉰에 하늘의 뜻을 알고.... 공자가 했던 말이다. 지천명이라니 하늘의 이치를 알게 된다는 뜻이다 싶은데, 처음 들었을 때는 뭔가 대단해 보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우주의 이치를 꿰뚫어 본다는 것 아닌가. 오십 정도 되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눈에 보이는 것일까. 범인이야 못해도, 공자 정도의 위인이라면 가능한 것일까. 젊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마흔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는 때는 없었다. 오십이 되어도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일은 없다. 더 많은 경험을 했고, 더 많은 여행을 했고, 더 많은 책과 영화를 봤어도 여전히 세상은 오리무중이다. 간혹 이거 조금은 알 것 같은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렇게 자신하고 있으면 늘 허방을 짚고 떨어지거나 뒤뚱거리다 겨우 균형을 잡았다. 내가 하는 실수와 잘못도 조금씩 나아지기는 하지만 여전히 되풀이하고 있다. 나쁜 놈들의 종류는 흘러넘치고 너무나 다양해서, 만나고 스칠 때마다 세상은 무한하다는 감탄을 하곤 한다.
공자가 말한 지천명은, 세상의 모든 것을 깨닫는 상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천명’과 다를 수 있음을 깨닫고, 나의 한계를 알게 된다는 것에 가깝다고 한다. 알 것 같다. 지금 오십은 뭔가를 충분히 더 할 수 있는 나이지만, 공자의 시대만이 아니라 1980년대까지만 해도 오십은 노인으로 접어드는 나이였다. 육십을 넘기면, 장수를 축하했다. 적어도 80살까지는 살 것이라고 예상하는 지금 생각하기에 오십은 아직 생이 많이 남았지만, 그 시절의 오십은 생의 황혼기였을 것이다. 생을 돌아보고, 자족하거나 내려놓아야 하는 때.
물론 지금도 비슷하기는 하다. 적어도 오십에는, 두 번째 인생을 생각해야 한다. 운 좋고 성공한 사람들은 지금까지 했던 전문직이나 가업을 죽을 때까지 이어가겠지만, 대부분 정년을 맞이하고 다른 일 혹은 취미를 찾아가야 한다. 비슷한 일을 계속하더라도, 신체의 노화로 인해 일을 재조정해야 한다. 스스로 일을 좀 내려놓고, 돈만 쫓는 일도 줄이고, 자신을 찾거나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이제 일 좀 그만 벌이고, 즐거운 일을 해.’
친구에게 말했다.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곤도 마리에는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고 말했는데, 설레는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적어도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 그동안 개달은 게 있으면, 내 천명이 세속적인 성공이나 떼돈이나 그런 것은 분명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건 확실히 안다. 그러니까 일하면서 스트레스받아 건강까지 해칠 정도면 피하자. 느슨하게 살자. 아니면 말고, 느긋하게 돌아가자. 산다는 게 좋은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살아있는 동안은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