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김봉석 작가는 나랑 한두 살 차이가 나는 정도라서 삼촌 뻘은 아니지만 삼촌 같다. 타지에서 일하는 공부 많이 한 룸펜 삼촌인데, 일년에 한두 번 정도 집에 들러 안부를 전하고, 점심을 먹고는 또 금방 사라져서 한참 있다가 볼 수 있는. 실제로 안부를 물어보면 그는 대부분 영화제가 열린 먼 곳에 있거나, 해외에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그의 하숙집 같고.
세상에는 여러가지 문장이 있는데, 김봉석의 문장은 다만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있어서 합당하다는 느낌을 준다. 특별한 뭐가 있는 것은 아닌데 단어도, 조사도 자기 자리를 찾아가 있다. 주머니가 쓸 데 없이 많지도 않고, 이상한 로고 플레이나 장식도 없다. 워크 웨어처럼 필요한 단추와 주머니가 필요한 자리에 단정하게 붙어 있어서 편안하고 적절하다. 그에게서 배운 것이 있다면 굳이 드러내거나, 내밀지 않아도 다만 문장과 단어들이 제자리를 찾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좋은 이야기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단어나 문장의 입장에서도 자신들이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지금, 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기쁠 것 같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모퉁이를 지나면, 거리를 건너면, 골목으로 스미면 나를 위한 장소가 언제나 존재한다는 느낌. 다만 거기까지 가려면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하고, 약간의 욕심은 덜어내야 하는 수련이 필요하지만.
있어야 할 것을 있어야 할 곳에 되돌려 놓는 봉석이 삼촌의 우주가 가능한 이유는 아마도 그가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강요하거나 강권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다. 무엇을 하는 것이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내가 해보니까 어떻더라, 정도의 가벼운 조언도 스스로 경계한다. 봉석이 삼촌의 우주에는 그냥 각자 합당한 자리가 있기에 강제 따위가 설 땅이 없는 것이다. 존재의 제자리를 볼 줄 모르는 자들이나 어줍지 않게 강권하고 조언하고 막 그러는 것이다.
사실 K-관계에서 누군가에게 조언하지 않고, 그의 생활이나 인생이나 생각에 한 뼘도 개입하지 않아도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경험이다. 참견하지 않기 대회 같은 게 있으면 아마도 그가 10년 연속 금메달을 받을 것 같지만, 그런 대회는 열리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그런 대회는 후원사를 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얼마전에 나한테 여행을 좀 다니라고 그랬다. 참견하지 않기 대회 월드 챔피언인 그가 그런 말을 할 정도면, 좀 새겨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20년인가 전 즈음에 몽골에 한번 다녀오고는 여행 같은 걸 가본 적이 없어서 여권이 이미 말소되었다. 나는 그 흔한 동남아도, 일본도, 다녀본 적이 없다. 몇 달 전에 속초에 가본 것이 근 10년 간 가장 멀리 간 장소다.
봉석이 삼촌이 평행 우주의 저편에서 그렇게 말을 하니까 진짜 여행을 가야 할 것만 같다.
일단 조만간 여권을 신청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