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가마쿠라는 일이었고, 사흘간 도쿄에 홀로 남았다. 처음 간 도시라면 이거저거 찾아보고 유람도 하지만, 익숙한 곳에서는 느긋하게 시간을 흘려보낸다. 만날 사람 한두 명, 갈 곳 한둘 정도만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서 넣고 빼며, 혼자 다닐 때는 여유롭게.
하루는 도쿄에서 한국어학원을 하는 후배를 만났다. 다음날은 시모키타자와를 갔다. 외국인이 많이 찾는 신주쿠에서 지하철로 두세 정거장 떨어진 지역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에 종종 등장했던 시모키타자와는 일본인 친구와 함께 처음으로 갔다. 연극과 인디밴드 공연이 많이 열리는 거리 정도로 알고 간 시모키타자와는 유흥가로 변하기 전의 홍대 거리 같았다. 이후에 자료를 찾아보니, 60년대 말, 70년대 청년문화의 중심지였던 신주쿠에서 젠트리피케이션 등으로 밀려난 문화예술인들이 자리 잡은 곳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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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시모키타자와를 간 이유는, 보너스트랙이다. 일본의 서점을 찾아다니는 페친이 보너스트랙에 있는 작은 책방을 소개했고, 책방의 느낌도 좋았지만 사진에서 보는 쾌적한 분위기의 보너스트랙에 뭔가 끌렸다. 시모키타자와역에 내려 뉴욕 브루클린 스타일로 꾸몄다는 미칸 시모키타를 구경하고, 책과 액세서리와 과자 등 모든 것을 파는 잡화점 빌리지 뱅가드에 들렀다가 보너스트랙으로 향했다. 골목길을 천천히 걸으며 구글 맵이 인도하는 곳으로 향했다. 도착을 해보니 구글 맵은 너무 돌았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골목에서 만난 오래된 집의 풍경이나 조용한 골목길의 느낌이 좋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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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원 같은 곳을 지나니 보너스트랙이 보였다. 2층, 3층의 건물 너댓 개가 옹기종기 놓인 모양이었다. 주택가 가운데, 아마도 철길이 있던 곳을 리뉴얼한 모양새였다. 건물 옆으로 들어가니, 마치 중정 같은 아늑한 공간에 여러 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주변의 식당에서 음식을 시켜 먹는 공간이다. 보너스트랙은 식당과 가게들이 있는 건물들만 따로 세운 공간이 아니다. 시모키타자와역에서 죽 이어지는 철길을 재개발하면서 공원을 만들고, 끝나는 구역에 건물들을 세웠다. 보너스트랙은 공원 한켠의 쉼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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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막 개장한 록폰기 힐즈에 갔다. 도쿄 중심지인 록폰기의 낡은 건물과 집들을 헐고 최고급 맨션과 사무실, 쇼핑몰과 식당가, 아사히 TV 사옥, 공연장 그리고 정원과 작은 신사까지 도시 하나를 축소한 것 같은 공간이었다. 이후 록폰기 미드타운, 토라노몬 힐즈 등 도쿄의 대형 재개발 트렌드의 출발점이었다. 당시에는 록폰기 힐즈를 보면서 감탄했다. 모든 것이 거대하고, 화려하고, 세련됐다. 아직 선진국이 아닌 2천년대 초반의 한국에서 온 나는 첨단 문명의 호사로운 성채에 감탄하고 있었다.
20년 후, 보너스트랙을 보면서, 이게 맞다, 는 생각이 들었다. 록폰기 힐스처럼 모든 것을 부수고 거대한 왕국을 세우기보다, 세분된 작은 구역들과 천천히 걸을 수 있는 골목길 등을 남겨두고 재구성하여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 막강한 인간의 힘을 느끼는 것은 원치 않는다. 인간은 너무 커지고, 너무 대단해져서 지구를 파괴하고, 스스로 몰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필요한 것은 화해이고, 조화이고, 작은 것들과 공존하는 세계다.
보너스트랙을 나와 커피를 한잔 마시려고 카페를 찾았다. 구글맵을 뒤져 찾은 카페는, 한적한 골목 안쪽에 있었다. 들어가니 재즈 음악이 흐르고, 아마도 주인 노부부의 취향이었을 그림과 가구들 그리고 고양이 인형이 맞아주는 안락한 카페였다. 한쪽에 낡은 재즈 음반과 앰프, 턴테이블 등이 놓여 있다. 노부부가 카페를 차리면서, 모아둔 예술품으로 공간을 꾸미고 음반과 앰프를 가져와 음악을 틀었을 것이다. 영업시간은 오후까지이고, 금토에는 8시부터 11시까지만 운영한다. 아마 그 시간에는 재즈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싱글몰트 위스키와 칵테일을 마실 수 있지 않을까. 오랜 시간 쌓인 취향이 만들어낸 공간이고 카페였다. 이런 공간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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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김봉석 [씨네21] [브뤼트] [에이코믹스] 등의 매체를 만들었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쳤다. 대중문화평론가, 작가로 활동하며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내 안의 음란마귀』, 『좀비사전』, 『탐정사전』, 『나도 글 좀 잘 쓰면 소원이 없겠네』 등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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