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기싸움이 강하다는 말이 있다. 여자들끼리 만나면, 아무리 친해 보여도 살벌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외모 칭찬을 하면서 묘하게 비꼬거나 깎아내린다. 상대의 말에 동의하는 듯하면서도 뭔가 한마디를 덧붙인다. 그런 상황들을 실제로 본 적도 있으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남자들의 허세 배틀이 여자들의 기싸움보다 훨씬 기세등등하고 추잡하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의 허세는 수동공격이 아니라 직접적이다. 자기를 한없이 드높이고, 상대를 노골적으로 깔아뭉갠다. 어릴 때부터 알던 친구들이 만나면, 내내 상대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소위 ‘불알친구’이고, 확실한 우열관계가 없다면 격의 없는 사이임을 자랑하고 증명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우열관계를 이용하여 비하와 조롱이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술자리 칼부림으로 발전할 수 있다.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폭행의 상당수는, 모르는 사이가 아니라 함께 어울리는 친구 동생 사이에서 주로 벌어진다.
처음 만나는 남자들은 일단 서로 관찰하며 정보를 모은다. 일반적인 만남이라면 명함을 주고받는 정도에서 끝난다. 그런데 술자리에서 만난 사이라면 미묘하다. 수컷의 본능일까? 생존하기 위해 자신의 강함, 크기를 부풀리는 것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것일까? 완전한 을이라서 갑에게 아부와 칭송을 해야만 하는 입장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기 과시에 열중하는 빈도가 높다. 이 자리에서 가장 강하고, 의미 있는 존재는 자신임을 어필하며 우두머리가 되려는 본능 같다.
A와 B도 치열하게 허세 배틀을 전개했다. 내가 누구를 알고 있는데 예전에 어떤 사이였다. 내가 했던 어떤 일이 대단히 크고 중요한 것이었다 등등. 탁구 경기처럼 주고받으며 이어지는 이야기는, 술자리에서 흘리며 들어줄 법한 것이었다. 그러다 점점 궤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자기가 만난 여성들, 그들이 얼마나 자기를 좋아했는지, 어떤 연애를 했는지 등을 늘어놓았다. 오래전 학창 시절 무용담도 빠지지 않았다. 아는 사람들 리스트에 유명인도 나오고, 외국인도 나오고.... A와 B의 대화는 어느 순간, 무규칙 이종 격투기의 느낌으로 흘러갔다. 주먹이 오고 가다가, 갑자기 니킥이 나오고, 발을 나꿔채 꺾어댄다. 이러다 목 조르기까지 들어가는 거 아닌가?
가운데 앉은 나는 고개를 돌려가며 A를 보다가, 다시 B를 보다가, 앞에 놓인 술과 안주를 보다가, 생각했다. 꽤 흥미롭기는 한데, 이걸 내가 들어줄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내가 빠지면, 두 사람이 대화를 계속하지는 않을 테고. 서로에게 어필하며 우세를 점하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관중이 없다면 그들의 배틀은 아무 의미가 없다. 승자가 된 자신을 보아줄 관객이 필요할 테니까.
그래서 끝냈다. 피곤하다. 오늘 행사가 너무 힘들었어. 이제 그만 들어갑시다. A도, B도 순순히 일어섰다. 딱히 누군가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승패를 쉽게 판단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애초에 누군가 쉽게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허세는, 팩트에 기반한 것이 아니니까. 얼마나 자신을 부풀리고, 얼마나 거대한 자신에 도취할 수 있는가에 허세의 성취가 달려 있다.
가끔 그들의 허세를 들어줄 수는 있다. 한 사람의 허세는 한 귀로 들으면서, 다른 귀로 흘려보낼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허세로 겨루기 시작하면, 곤란하다. 내가 돈을 받으며 참아준다면 모르겠으나, 공짜로 견디기에는 너무나 거대하고 복잡한 소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