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달에는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지만, 배가 아픈 사람은 별로 없고, 다 같이 배고픈 사람들이 나온다. 타인의 성공을 부러워하거나, 질시하기보다는 축하해주려고 애를 쓴다. 사는 게 고달프고 서글프지만, 그건 배가 고파서 그런 것이지 적어도 배가 아파서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쉽지 않다.
배고프면 서럽지만, 배가 아프면 초조하고 불안하다. 어떤 것이 미덕일까. 그 옛날의 미덕이 더 돋보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자기계발의 시대, 계급 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진 시대를 거쳐 오면서 배고픔은 배가 아픈 것보다 수동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가끔 너는 배가 아픈 게 아니라, 다만 배가 고픈 거라고 말해주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구든 스스로를 괴롭히는 걸 별로 보고 싶지 않을 때 그런 생각이 든다. 전에는 배고픔이 곧바로 배 아픔으로 치환되지 않는, 다른 감각이었는데 어째 요즘은 배 아픈 게 배고픔을 압도하는 감각이 되어버린 것 같다.
너도 나도 배가 아픈 게 시대정신이고, 결국 복통(?)도 사회적 감각이라지만, 온통 배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에 나는 사실 적응이 잘 안된다. 양극화가 본격화된 시대라는 걸 감안하면 배 아픔보다 배고픔이 더 부각되어야 당연한 것 같은데, 어째 세상은 그 반대인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들어 소화도 잘 되지 않고, 자주 배가 아프다. 피자, 햄버거, 탄산 음료, 치킨을 오랜 세월 들이부은 결과다. 그래서 아주 조금만 먹고, 때로 견딜만 하면 굶는다. 그래서 요즘은 늘 배가 고프다.
아픈 것보다는 고픈 것이 낫다. 본갑이가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의 몸이 그런 것을 보면, 심리적으로도 배가 아픈 상태보다는 배가 고픈 것이 차라리 나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서울의 달처럼 배고픈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데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생각도 들고.
달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저울질해 본다. 달이 밝으니 내일은 햇볕이 쨍쨍할 할 것 같다. 자외선 차단제를 듬뿍 발라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