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스포츠 경기를 보던 시절이 있었다. 야구, 농구, 배구, 씨름, 미식축구, 테니스, 골프 등등. 유일하게 보다 그만둔 스포츠는 크리켓이다. 위성 채널 ‘스타 스포츠’에서 해 주는 크리켓을 두어 시간 보다가, 이건 내가 볼 게 아니다, 생각이 들어 그만뒀다. 너무 길어서 지루하고, 룰이 복잡해서 몰입이 힘들었다. 지금은 프로야구와 격투기(프로레슬링 포함)만 보고 있다. 단순하게,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스포츠는 경기 매 순간의 짜릿함도 좋지만, 나는 ‘스토리’를 즐긴다. 선수들의 개인사, 선수 간의 관계, 팀의 역사, 기술의 변화와 발전 등등 많다. 야구 영화 <머니볼>이 찬사를 받은 이유는, 스포츠가 아드레날린을 끌어올리는 흥분제 이상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머니볼>의 주인공은 슈퍼스타나 드라마틱한 이력을 가진 선수, 감독이 아니라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를 이끌었던 단장이다. 독창적인 통계와 분석을 통해 스타 선수 없이도 오클랜드를 최강팀으로 만들었던 단장. 특히 야구의 통계는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스포츠는 통계를 무시하는 특이점이 늘 존재하기에 매혹적이다.
요즘은 프로야구보다 <최강야구>를 더 열심히 보고 있다. 응원팀인 LG가 잘하고는 있지만, 약간 비호감인 감독을 비롯해 마구 열광하기에는 조금 온도가 약하다. 예능 프로그램인 <최강야구>는 엘지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박용택이 주장이고, 시즌2에 빠졌지만 비운의 투수 심수창이 감초 역할이라 시작부터 흥미를 가졌다. 정성훈, 정의윤, 서동욱 등도 엘지 출신이다. 한때 최고였던 선수들과 어느 정도 이름값을 하는 선수들이 모여 독립리그, 대학, 고교 야구팀과 대결을 한다. 승률 7할을 넘지 못하면 다음 시즌은 없다. 은퇴한 선수들이 모여 다시 열정을 불태우고 노력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시즌1 몇 경기를 남기고, 이승엽이 두산으로 가면서 감독 자리가 비었다. 그리고 김성근이 감독으로 온다. OB와 SK 감독으로 우승했고 태평양, 삼성, 쌍방울, 한화, LG 감독을 했다. 많은 팀에서 감독을 했다는 것은 능력이 뛰어난 동시에 많은 트러블이 있었다는 의미다. 해태와 삼성의 김응용 감독이 원만하게 한 팀에 오래 있었던 것과 비교된다. 너무 독단적이라고도 하고, 선수 혹사 문제도 있고, 패거리주의가 지나치다는 비판도 있고, 승리를 위해 위장 오더나 사인 훔치기 등을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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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김성근을 좋아하지 않았다. 능력은 인정하지만, 뭐랄까 전형적인 근대의 인물 같았다. 승리를 위해서 물불 가리지 않는 야심가. 그런데 <최강야구>를 보면서, 약간 생각이 바뀌었다. 김성근이 오면서 팀의 분위기가 확 변한다. 이전에도 경기에 지거나, 타율과 방어율 등 성적이 좋지 않으면 심기일전하고 확 불타오르는 것은 있었지만 잠시였다. <최강야구>는 예능 프로그램이고, 경기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김성근이 감독이 되자, 모두가 전력을 다해야 하는 분위기가 된다. 1942년생이니까 김성근은 80이 넘었다. 그라운드에서 직접 공을 치면서 내야수의 수비 훈련을 시킨다. 무기력하게 지고 난 후의 표정은, 한국시리즈에서 패한 감독의 얼굴 같다. 김성근은 선수들에게 말한다. 돈을 받으면 프로라고. 출연료도 마찬가지다. 프로라면 전력을 다해서 해야 한다. 프로그램이 없어지면 수백 명의 작가, 스탭의 일터가 사라지는 것이다. 책임감을 느끼고,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다. 7할의 승률을 기록하며 시즌1을 끝내고, 시즌2가 시작할 때까지 은퇴한 선수들이 마치 현역처럼 훈련한다. 누구는 체중을 10킬로 넘게 빼고, 저마다 근력과 순발력 운동을 하고, 타격과 수비 훈련에 열과 성을 다한다.
나는 여전히 김성근이 과거의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행했던 승리의 방식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고 믿는다. 하지만 김성근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의 열정, 야구와 승리에 대한 열정은 확연하고,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감독 은퇴를 한 후에 조금 변했을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유해진 것일 수도 있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한참 욕을 먹을 때의 김성근도 열정이 타올랐을 것이다. 인간의 내면은 복잡하다. 좋은 면과 나쁜 면이 함께 존재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친절한 사이코패스를 말하는 건 아니다. 그저 인간이란 다양하고 모순된 요소들이 얽히고 충돌하면서 균형을 잡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최강야구>라는 예능이면서 스포츠 프로그램을 통해서, 김성근이라는 인간의 다른 면을 좀 깊게 들여다봤고, 나는 그의 열정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열정이 희박한 인간이지만, <최강야구>의 김성근을 보면서 한 가지는 생각했다. 언제나 현역으로 살아가자. 엄청나게 노력하거나 혹사하지는 않지만,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대하자. 가볍지만 진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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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김봉석 [씨네21] [브뤼트] [에이코믹스] 등의 매체를 만들었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를 거쳤다. 대중문화평론가, 작가로 활동하며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내 안의 음란마귀』, 『좀비사전』, 『탐정사전』, 『나도 글 좀 잘 쓰면 소원이 없겠네』 등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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