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멜빈과 캐롤이 점차 서로를 알아 가는 과정이나, 그 둘의 마음이 ‘짠’하고 통하는 순간 따위가 아니다. 진상 아저씨가 ‘알고 보니’, ‘사실 알고 보면’ 따듯하거나 배려심이 넓다거나 하는 따위의 이야기에는 사실 그닥 관심이 가질 않는다. 함께 빵을 사먹거나 춤을 추거나, 근사한 식당에서 마음을 속삭이는 장면은 외려 몰입을 방해할 지경이다.
막강한 빌런, 진상 멜빈 아저씨에게 화내고, 짜증내는 사람들이 내뱉는 악다구니의 내용들을 하나 하나 맛보는 재미가 이 영화를 더 자주 찾게 만든다 이 영화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도 달달한 로맨스의 순간과는 거리가 멀다.
여주인공 캐롤에게는 아이가 하나 있는데, 천식? 알러지? 때문에 아주 어릴 때부터 병치레가 많았다. 때문에 캐롤은 아이를 돌보느라 연애도, 외출도, 자기 시간도 없는 일상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빌런 진상 멜빈이 아이를 위해 유능한 의사를 섭외해 캐롤의 집으로 보내준 것이다. 물론 비용도 다 멜빈이 감당하기로 하고! 캐롤 말고는 단골 식당에서 멜빈의 강박-편집증에 최적화된 서비스를 해주는 사람이 없는 탓이다. 캐롤이 없으니 자신이 쫄쫄 굶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멜빈은 캐롤이 아이보다 일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야 자신이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으니까.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캐롤은 진상 멜빈의 급작스러운 호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그 호의의 정체에 대해서도 의심하고 고민을 거듭하던 어느 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데 캐롤은 멜빈의 집으로 향한다. 초조하게 멜빈의 커다란 집 문을 두드린다.
어쩌구 저쩌구 더듬더듬 멜빈의 호의에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구나 싶더니, 그렇지만 결코 네버 에버 멜빈 당신이랑은 자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네버 에버 절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이 부분이 내가 제일 좋아라 하는 장면이다. 캐롤은 멜빈이랑 잘 생각이 없다. 물론 아들의 병을 크게 호전시켜 줄 멜빈의 호의는 고맙지만 절대 네버 캐롤은 멜빈이랑은 자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웃음을 감출 수가 없다. 그냥 영화가 여기서 끝났으면 싶다. 그렇지만 영화는 내 바람과 달리 다시 긴 러닝타임을 소비해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는 연인으로 발전하기까지 차분하게 둘을 따라가며 비춰준다.
진상에게도 빌런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는 듯. 진상이나 빌런의 진심도 통할 수 있다는 듯. 1997년은 아직 그런 시대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안된다. 흔히 이 영화의 명대사를 “You Make Me Wanna be a Better Man” (당신은 내가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해요) 이라고 적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뭘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저출생 시대를 예언하고 그 원인을 분석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I’ll never sleep with you, Never, e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