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아마도 그 비율은 사람마다, 여러가지 조건에 따라 다를 것만 같다. 어떤 사람은 오후 3시가 되면 그날 일에 할당된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껍데기만 남아서 앉아 있다면, 어떤 사람은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도 그 엔진이 가라앉지 않아서 남은 에너지를 다 쓰지 않으면 집에 돌아가서도 뒤척이는 것이 아닐까.
체질량을 재는 기계처럼 사람마다 일에 할당된 체력을 측정해주는 기계 같은 있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한국 워라밸 측정 연구소 같은 인증 기관이 있어서 어떤 사람은 하루 4시간, 어떤 이는 하루 10시간, 사람마다 공신력 있는 인증을 받아서 그 시간에 준해서 일하는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 그럼 좀 편해지지 않을까?
내가 하루에 해치울 수 있는 일의 양에 대해 어느 정도 직감적으로 알게 되기까지, 그리고 그것을 순순히 인정하기까지도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의 양, 난이도를 파악하느라 쓸 데 없이 낭비한 시간이 너무 많다. 요즘은 그 선을 넘어서까지 일을 하기 시작하면 마치 내가 나를 ‘외주화’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뭔가 내가 나라기 보다는, 자전거 같다. 페달을 밟으면 앞으로 나아가지만, 그 뿐이다. 주위의 풍경이나 바람이며 냄새가 다 사라진다.
그런 느낌이 들면 내가 나에게 할당된 일의 양을 지금 열심히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이건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일에 대한 애정이 떨어졌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데, 혼자 남아서 일하는 시간들을 여전히 좋아하긴 하는데 전과는 다르다. 내가 지금 하는 일 때문에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거나, 천천히 세상으로부터 자꾸만 격리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맨 처음 ‘라이프 온 워크’하고 쓸 때만 해도 이런 말을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워라밸 워라밸 소리가 지겹다는 말을 하려던 참이었다. 워라밸을 지키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서, 정작 일을 하면서 느끼는 괴로움이나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 괴리감을 일 안에서 해결하는 데에 사람들이 점점 더 무관심해지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워라밸이 일에서 생긴 난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나 성장의 순간을 지연시키고, 끝도 없이 유예시키는 사람들의 핑계가 되고 있다고.
꼴 보기 싫다고. 하고 싶은 말은 정해 놨는데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쓰다 보니 글의 내용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내뱉은 문장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지시도 잘 따르지 않는다.
다만 나는 아직도 나에게 나의 말을 듣지 않는 문장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조금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