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난방으로 흩어진 마감에, 아직 내 손길이 절실한 어린 아이 둘을 건사하다 보니 길게, 멀리 떠나는 일이 자꾸만 요원해진다. 그래서인지 나는 요즘 일상 구석구석에서, 짬짬이, 틈나는 대로, 갭타임을 가져보려고 애를 다 쓰고 있다.
갭타임이란 무엇인가? 틈, 사이, 공백을 뜻하는 gap에 시간을 접목했으니 쉽게 말해 브레이크 타임, 쉬는 시간 등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다음 스텝을 잘 밟기 위한 마인드 리셋의 기회로 삼아 볼 여지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나에게 즐거움, 휴식, 이완을 가져다 주는 모든 것들이 다 갭타임의 영역에 들어올 수 있다. 컴퓨터가 부팅되는 동안 한번씩 즐기는 모바일 게임, 퇴근 길 에코 백 안의 스니커즈를 꺼내면서부터 시작되는 도심 속 산책, 아늑한 침대에 누워 듣는 ‘귀 파는 ASMR’ 등은 숱하게 뻗어나갈 수 있는 갭타임의 극세밀 예시에 불과하다. 일찍이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은 산책을 하며 아이디어를 떠올리길 즐겼고, 윈스턴 처칠은 폭탄이 오가는 전쟁터에서도 규칙적인 낮잠으로 나름의 갭타임을 가졌다니 이 정도면 인류는 알게 모르게 갭타임과 함께 성장했는지도 모른다.
내 갭타임은 주로 아이들 하원 30분~1시간 전에 주어진다. 미리 나서서 던킨이든 스타벅스든 커피숍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면 전화, 카톡에 치여 시들시들했던 마음에도 청량한 물줄기가 쏟아진다. 해야 할 일의 전부가 고작 커피 한 모금씩 홀짝이기라는 사실이 너무 홀가분하고 좋아서 이 순간만큼은 만수르나 이재용도 안 부럽다. 무엇보다 바쁘게 돌아가는 남들의 일상을 나 몰라라, 아무렴 그러라지~ 관망하듯 대할 수 있어서 변태 같은 위안도 얻는다.
어떤 날은 등원 후, 어떤 날은 하원 전으로 그때그때 시간대가 달라 아침 저녁으로 오묘하게 변하는 동네 분위기를 느끼기에도 참 좋다. 복잡한 머리를 비우고, 새로 움직이고 싶은 의지를 다지기에 충분한 하루 잠깐의 시간. 그렇게 잠깐 갭타임을 갖고 나면 이제 다시 움직여볼까? 싶은 의욕이 조금씩 고여 찰랑거린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면서 여행에 대한 막연한 기대도 많이 옅어졌다. 여행하듯 평범한 일상을 대하라는 말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